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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Jan 06. 2021

[병원여정] 15. 두 번째 병원

병원에 정 들겠네, 정 들겠어

 격동의 퇴원과 재입원을 겪고, 나는 다시 평온한 병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재활치료실의 선생님은 분명 작별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2주 만에 다시 찾아온 나를 보고 의문을 품으셨다.


 “다시 아파서 온 거예요?”

 “네. 뭐…”


 딱히 구체적으로 말을 하기도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대충 얼버무렸다. 선생님은 전보다 강도를 높여 운동을 시켜주셨다.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연습을 했고, 다리를 절지 않고 똑바로 걷는 연습을 했다. 바닥에 길게 붙은 테이프를 따라 일자로 걸어야 했는데, 조금만 주의를 딴 데로 돌리면 금세 길을 벗어나곤 했다.


 “봐요. 사람들은 다리를 굽히면서 걸어요. 민경 씨는 지금 펭귄처럼 걷고 있어요.”


 저도 알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단지 걷기만 했을 뿐인데 치료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땀 범벅이 되어 치료실 문을 나섰다. 여전히 나는 치료실에서 나오면 숨을 헐떡이며 바로 앞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기도는 언제나 같았다.


 ‘크게 다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어제보다 더 아프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서 울며불며 통곡했던 시간을 겪고 나니, 병원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한없이 감사했다. 조울증약을 여전히 먹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매일 평온하고 안정된 감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자 몸도 더 좋아지고 밥도 더 잘 들어갔다. 전에는 입맛이 없어 세 숟가락 정도 들고 나면 더는 먹고 싶지가 않아서 다 남겼는데, 이제는 반 공기는 기본이었고 더 먹으면 한 공기도 뚝딱 먹어치워 버렸다.


 다시 입원할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조금 꺼리셨던 것 같다. 가뜩이나 병실이 없는데 충분히 집에서 치료해도 될 사람이 입원시켜달라고 조르니 난감하셨을 법도 하다. 하지만 내가 울상을 지으며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하자, 대신 조건을 걸어 주셨다.


 “알았어요. 그럼 2주만 더 입원하도록 해줄 테니, 그동안 더 열심히 치료받고 퇴원해야 합니다.”


 2주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2주가 다 지나고 나니 또다시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와 상의 끝에 다른 재활 전문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 병원도 2주만 입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거라도 다행이었다. 엄마도 내가 집에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쩔쩔매고 있는 것보다 병원에서 돌봄 받는 것이 훨씬 편하다며, 이 병원 다음에 옮길 다른 병원도 미리 알아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새롭게 입원하게 된 두 번째 병원. 나는 그곳에서의 기억이 참 좋다.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시설이 조금 낙후되어 있었고, 이전 병원과는 달리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나름 전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들과 낯을 익히며 농담도 하고, 위로도 받고 했던 추억이 있던 나는 새로운 병원에서 놀라울 만치 나에게 말도 걸지 않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이튿날 치료 일정을 따라다니며 치료실 이곳저곳을 방문하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재활 전문 병원답게 치료실이 많았고, 치료사 선생님들이 전부 내 또래의 젊은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치료사 선생님들과도 데면데면 했을 텐데, 오랜 병원 생활로 내가 많이 외로웠나 보다.


 병원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와 대화할 땐 보통 ‘어떻게 오셨냐’는 식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 대화법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름이나 나이를 먼저 물어보는 게 아닌, 병명이 무엇이고, 왜 아파졌는지 그 사연을 묻는다. 치료실에서의 첫 대화도 그랬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아, 사실 오토바이 타다가 그랬어요.”


 “네? 우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되게 용감하시네요.”


 “하하, 보기보다 겁이 없어요.”


 “그러게요. 앞으로 다신 안 탈 거죠?”


 “당연하죠.”


 치료실 선생님들은 넉살 좋게 내 이야기를 받아쳐 주셨다. 이야기가 잘 통하니 나도 신이 나서 더 말을 하게 되고, 치료도 기분 좋게 끝났다. 좋아하는 맛집 이야기, 전에 했던 연애 이야기, 병원 밥 이야기, 게임 이야기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마음껏 대화했다. 답답한 병원 생활 중에 치료사 선생님과의 시간은 나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이었을지는 미지수지만, 선생님들의 그런 친절함 덕에 나는 매일 치료시간이 가장 기다려졌고 병원에서의 2주도 금방 지나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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