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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Dec 19. 2020

[병원여정] 13. 퇴원

일단은 퇴원.

 성탄제를 가기 전의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려 한다. 사실 입원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병원에서는 병실이 부족했는지 11월 중에 퇴원하자며 준비를 하라고 했다.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마어마한 병원비도 문제였지만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께서 일터와 집, 병원을 왔다 갔다 하시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 ‘퇴원’이라는 말이 썩 달갑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더는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 물론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온종일 가게에 계셔야 하고,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았던 남동생은 힘든 일이란 해본 적이 없어 날 돌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내 방은 2층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아직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겨우 내 체중만 잠시 실을 수 있을 뿐인데, 곧 퇴원 날짜가 다가온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병원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내가 사고 이후 작은 변화에도 공포심이 생겼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꿈에서조차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꿈은 나에게 매우 절망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그나마 여태껏 꿈속에서는 내가 전처럼 잘 걷고 뛰어다닐 수 있었다. 꿈에서나마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잊고 마음껏 걸어 다녔는데, 이젠 꿈속에서도 다리를 절기 시작한 것이다. 내 다리의 상태를 이젠 온몸이 인식하고 있다는 거겠지. 한낱 꿈일 뿐인데도 괜히 섭섭했다. 이젠 꿈에서까지 다리를 못 쓰는구나.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에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찔끔 나오곤 했다.


 그렇게 퇴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한 주를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빨리 퇴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사건이 생겼다. 


 그 당시 나는 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옮겨져 있었다. 통합서비스 병동은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고 대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조금 더 세밀하게 돌봐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사사로이 밥까지 떠먹여 주시는 정도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를 위해 식판 정도 가져다주실 수 있는 정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도 병실이 다 차서 1인실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보호자도 없이 1인실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물론 수시로 간호사, 조무사 선생님들이 문을 열어 불편한 것은 없는지 확인해주셨고, 필요한 게 있으면 호출 벨을 눌러 말씀드리면 되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로 호출벨을 누르는 ‘진상’ 환자가 되고 싶진 않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나았다. 


 목이 말라도 참고 기다렸다가 식사를 가져다주실 때 부탁드리고, 화장실도 최대한 참다가 한 번에 갔다. 그 얘기를 듣고 엄마와 주변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했다.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왜 바보처럼 참고 있느냐고. 하지만 간호사인 친구에게 진상 환자에 대한 욕을 자주 들어서인지, 매번 호출 벨을 눌러서 선생님을 부른다는 게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고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역시 한참을 참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호출 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병실에 들어오시고, 다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화장실에 안전하게 가는지 지켜봐 주셨다. 1인실이기 때문에 내가 혼자서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지더라도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이 발생했다. 보통 선생님들은 내가 볼일을 다 마치고 나와 침대에 눕는 것까지 도와주시는데, 그 선생님께서는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문을 닫으며 이런 소리를 남기고 사라지셨다.


 “호호, 민경 씨. 넘어지시면 안 돼요! 저 시말서 써요!”


 “네?”


 “...”


 내가 되물을 때에는 이미 선생님은 문을 닫고 나간 뒤였다. 바쁜 일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마저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있는데, 문득 억울함인지, 서러움인지,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서러울 일도 아닌데, 그냥 그 당시에는 내가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져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선생님은 이전에도 나에게 비아냥대는 투로,


 “많이 아파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다치래요!”


 라는 식의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혼자 벽을 짚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침대로 돌아오니 이마에서 땀이 났다. 다행히 무사히 침대에 눕긴 했지만, 혹시나 내가 넘어졌더라면 과연 몇 시간이나 뒤에 나를 발견할까? 라는 생각이 들자 억울함이 배가 되었다. 


 그 억울함은 곧 간호사 선생님에 대한 미움이 되었고,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엄마에게 전화했고, 그 상황을 들은 엄마는 분개하며 당장 이번 주가 지나면 퇴원을 하자고 하셨다. 


 창피하지만 엄마는 그 날 저녁 병원으로 와 수간호사 선생님께 조용히 이 말을 전했고, 수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병실로 와서 나에게 사과하셨다.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진상 환자가 된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결국, 그 주가 지난 뒤, 나는 퇴원하게 되었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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