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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Dec 07. 2020

[병원여정] 11. 눈물의 재활치료

 처음으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디딘 날, 그 뒤로 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일어서서 한 걸음이라도 걷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공포를 이겨내자 두 번째부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물론 여전히 생살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고, 갓 알에서 깨어난 오리처럼 버둥거리는 꼴이었지만 나는 그런 내가 재미있었다.


 아마도 첫걸음을 밟은 기쁨의 여파가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라는 말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경험도 하는구나. 이렇게 귀한 경험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날부터 병원 생활이 굉장히 바빠졌다. 본격적으로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오전에 침대에서 누워 할 수 있는 기계치료 한 번, 재활센터로 가서 치료사님과 함께 운동 한 번, 오후에도 기계치료와 재활센터 운동을 받고 통증 치료까지 병행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처음엔 휠체어로만 이동했었는데, 운동을 하고 나니 이틀 만에 목발을 짚고 혼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첫날 휠체어를 타고 재활센터를 방문했을 때, 그 광경은 마치 헬스장을 방불케 했다. 물론 운동기구의 종류는 조금 달랐지만, 치료사님들이 마치 헬스장의 코치님처럼 한 사람씩 맡아서 운동을 도와주시거나, 도수치료를 해주시고 계셨다. 나는 또다시 ‘처음’이라는 공포로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한 치료사 선생님께서 “민경 씨?” 하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내 휠체어를 밀어주셨다. 


 가장 처음 한 운동은 다름 아닌 자전거 페달 밟기였다. 재활치료용 기구라서 페달은 반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의자의 거리를 조절해서 다리를 최대한 굽히지 않고 밟을 수 있었다. 내가 이 다리로 이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주 아프지도 않았다. 걷는 정도의 고통이 있었지만 이제 내게 그런 고통은 익숙했다. 어쩌면 이른 시일 안으로 내 다리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쁨을 잠시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옆자리에는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주 약한 할아버지가 나와 같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그 넓은 공간 안에 내 또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었고, 쇠약했고, 심지어는 눈을 깜빡이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들도 계셨다. 그 환자들은 침대에 누워 두 팔이 묶인 상태로 줄에 매달려 세워져 있었다. 매일 누워 있기 때문에 머리에서 발까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나 생소한 광경에,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던 내 마음이 쿵 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과연 나을 수 있을까? 낫는다고 해도 완벽하게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장면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바보 같지만, 당시에는 혼자 아는 사람도 없이 덩그러니 치료실에 있다는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이 매일 아픔과 싸우다 보면 아무리 좋은 것을 보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된다. 


 운동 기구가 20분이 지났다는 알람으로 삑삑댔다. 사람 좋은 웃음의 치료사님은 날 데리고 자그마한 침대로 가서 다리를 풀어주셨다. 오늘은 처음이니 살살 할 거라고 하셨다. ‘무엇을요?’ 라고 묻기도 전에, 선생님이 내 종아리를 꾹 누르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아악!”


 치료실 문을 닫을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망정이지, 사람이 많았으면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사극 드라마에서 산모가 진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큰 비명을 내가 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처음엔 아파서, 그다음엔 서러워서, 또 그다음엔 무서워서.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웃으실 뿐이었다. 내가 아파하는 게 그렇게 재밌을까. 나는 선생님에 대한 미운 마음이 커져갔다. 이윽고 그 악랄한 선생님은 내 다리를 서서히 접기 시작했다. 나의 비명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그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때쯤, 


 “아이고!”


 선생님의 팔을 꼬집어버렸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고, 내 다리를 잡아서 밀고 있는 팔을 멈추려고 잡았는데 힘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 것이다. 팔을 잡자마자 너무 놀라 손을 바로 떼 버렸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우스웠는지 동작을 멈추고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부끄러운 마음 반, 죄송한 마음 반으로 눈을 피했다. 하도 울어서 베개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 옆에서 다른 치료사님이 보시고는 휴지를 가져다주실 정도였으니…


 초면에 본인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한테 팔을 꼬집힌 치료사 선생님은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싶었는지, 나를 일으켜 앉히고는 이것저것 설명해주기 시작하셨다.


 “지금은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 많이 아프죠. 그래도 참고 해야 해요. 지금 빨리 움직여 두지 않으면 나중에 무릎이 다 굳어서 훨씬 더 심하게 운동해야 해요.”

 나처럼 징징대는 환자가 많아서 익숙하신 걸까, 아니면 나처럼 어린 환자를 오랜만에 보시는 걸까. 자상한 미소로 내 눈물을 닦아주며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시는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서러우냐며 또 웃으셨다.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다.


 “뭘요. 괜찮아요. 그렇게 아파요?”


 “아니요… 제가 너무 울어서요.”


 “아파서 우는 거예요? 무서워서 우는 거예요?”


 “둘 다요.”


 선생님은 내 말을 듣더니 호탕하게 웃으시곤 그렇게 겁이 많아서 치료를 어떻게 받느냐며 다리를 다시 풀어주셨다. 아까보다 훨씬 약한 손길이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늘 차가운 말투와 형식적인 친절 속에서 메말라가던 내게 그 손길이 참 감사해서 더 눈물이 났다.


 그때부터 나는 종종 치료실의 선생님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이성적으로 좋아한다거나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선생님은 초등학생 딸이 둘이나 있는 아버지였다) 단지 그 치료실 안에서 가장 빛나는 미소로 환자와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 멋있어 보였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선생님처럼 내 일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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