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U Nov 29. 2020

[병원여정] 10. 첫 발걸음

공포를 이겨내다니.

 다리 수술은 두 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다리에 커다란 흉터가 보기 싫게 남았지만, 창피하거나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이 상처 덕분에 내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고, 앞으로 살아가며 힘든 순간이 온다면 이 상처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힘든 고통도 이겨낸 사람이야.’라고 말이다.


 수술이 모두 끝나고 약 2주간 회복을 하면서 등에 욕창이 생겼다. 다리 전체에 힘을 줄 수가 없어 허리를 일으켜 세워 앉는 것도 불가능할 때였다. 매일 누워있느라 씻지도 못하고, 가장 많이 움직여봤자 왼팔을 뻗어 수납장 위 TV 리모컨을 가져오는 것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보시곤 담당의 선생님께서 의아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환자분, 이제 수술 끝났으니 일어나도 돼요.”


 벙벙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니 무심하게 다시 말씀하셨다.


 “물론 엄청나게 아프죠.”


 “아…”


 내가 스스로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과 의사 선생님이 “움직여도 돼요.”라고 해서 움직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겁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확신이 들고 더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하튼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몸을 일으켜보기로 했다. 충분히 가능했다. 가능은 했다. 예상한 대로 오른쪽 허벅지부터 힘이 들어가 다리 전체가 찌릿하고 아팠다. 생살을 찢는듯한 고통에 표정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오랜만에 상체를 일으켜 앉아보니 등이 시원했다. 엄마는 내 옷을 벗겨 등을 보고 혀를 차시며 연고를 발라주셨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이었다.


 “한 번 일어나볼까요?”


 “네. (인상을 찌푸리고 조심조심 일어난다.)”


 “좋아요. 그럼 이제 일어 서봅시다.”


 “네?”


 진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요.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도 무리하게 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걷지 않아서 근육이 다 빠졌을 거라며, 땅에 발을 딛고 서보기만 하자고 하셨다. 순간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이 다리로,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을까?


 한쪽에는 간호사 선생님, 반대쪽에는 엄마가 내 팔을 붙잡고 날 일으켜 세웠다. 무릎에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이 전해져왔다. 거의 6주 만이었다. 6주 만에 처음으로 발을 땅에 대고, 인간인 나는 수직보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호흡이 가빠져 왔고, 눈 앞이 하얘지면서 정신이 흐릿해졌다.


 결국 침대에 다시 내 몸이 뉘어지고, 나는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심장박동이 서서히 제대로 돌아오자 엄마가 휴지로 얼굴을 닦아줬다. 그제야 내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한바탕 소동을 보시고는 아직은 이른가보다며 쉬자고 하셨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지 말씀하셨다.


 “민경씨, 일어날 수 있어요.”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인간이 되고 싶어 꼬리 대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 한 걸음 걷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걸어나가는 인어공주.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 처음이 어렵지.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나도 곧 걸을 수 있을 거야. 나중엔 달리기도 하겠지.


 사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그렇게 감동적으로 용기를 주는 말은 아니었다. 정말 사실이었던 거다. 내 몸은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이지만, 내 감정 상태가 아직 온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혹시 필요하면 정신과 약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셨다. 약이라면 더욱 지긋지긋해서, 다른 방법을 택했다.


 “저녁에 한 번 더 시도해봐요. 또 쇼크가 오려고 하면, 비닐봉지에 입을 대고 숨 쉬어 봐요. 한결 나을 거예요. 그리고, 일어나는 거 무서워하지 말아요.”


 차갑지만 어딘가 따뜻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그날 저녁이 되었다. 엄마는 힘들면 오늘은 넘어가고 내일 하자고 하셨지만, 왠지 이번엔 할 수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이 들었다.


 이번엔 엄마의 도움으로, 침대에서 다리를 들어 바닥에 서서히 내려놨다. 바닥의 감촉을 천천히 느끼고 심호흡을 했다. 처음엔 다치지 않은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 오른 다리에 힘을 싣기 전, 피가 점점 쏠려 다리로 내려가는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또 호흡이 가빠져 왔다. 엄마는 내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곤 비닐봉지를 가져와 입에 씌워 주셨다. 내가 뱉은 숨을 다시 들이쉬기를 몇 번 하다보니 아득했던 머릿속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오른 다리로 조금씩 힘을 분산시켰다. 힘이 구슬 더미마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알씩 한 알씩 옮겨지는 것 같았다.


 성공했다.


 6주 만에 처음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스스로 감정 제어를 했다는, 공포를 지배하고 극복했다는 그 기쁨에, 뿌듯함에 일그러진 웃음이 나왔다. 아파도 괜찮았다. 여전히 죽을 듯이 아프지만 이제 나는 첫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는가. 그걸로 충분했다.

흉터투성이 내 다리


이전 09화 [병원여정] 09. 새로운 취미활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