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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Jan 15. 2021

[병원여정] 18. 고마운 사람들

 ‘코로나 블루’를 겪고 난 뒤, 다시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연애도 시작하게 되었다. 자상한 남자친구는 내 다리가 아픈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춰주었다. 표현도 아낌없이 해주는 고마운 남자친구 덕에 나는 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정적인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울증약을 끊게 되었다.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이었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제하며 연애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내게, 고마운 언니 한 분이 나타났다. 성당 주일학교에서 동료 교사로 만났던 이 언니는 나와 전공도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하고, 관심사마저 같아서 11살의 나이 차에도 죽이 참 잘 맞는 단짝 같은 사람이다. 


 이 힘든 시기에 언니는 나에게 함께 일하자며 손을 내밀어 주었고, 나는 그때부터 언니와 함께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감독 겸 편집자이다. 나도 전에 영상 편집을 잠깐 배워 단편 영화를 찍은 적이 있기 때문에 언니를 도울 수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언니만큼 실력이 좋지는 않아서, 처음엔 그저 SNS 계정에 홍보만 해드릴 뿐이었다. 


 홍보만 한 것은 아니고, 언니가 새롭게 작업실을 구했는데 이왕이면 월세도 벌 겸 카페와 펍을 겸한 공간을 만들 거라며 아르바이트를 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하셨다. 다행히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에 접근성도 좋지는 않아서 할 일이 너무 없었다.


 하는 일은 없는데 자꾸 언니한테 월급은 받다 보니 자꾸만 눈치가 보이고 스스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언니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그 일 중에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속상했다. 참 신기한 게, 나도 할 줄 아는 것이 많고 이것저것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음에도 언니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그만큼 멋진 사람이다.


 그렇게 멋진 사람 옆에서 나도 멋있어지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잘 안 되었다. 아마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을지 모르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돈만 받아먹는 뺀질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죄송한 마음 반, 그리고 피하고 싶은 마음 반. 결국, 3개월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작업실로 출근하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 되었다. 차라리 일을 못한다며 혼이라도 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언니, 저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언니는 많이 속상해하셨다. 함께 벌려 둔 일이 많은데, 같이 많은 것을 해 나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내가 쉰다고 하니 일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착하디착한 언니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그리고 꼭 돌아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일’하기를 원했던 나는, 막상 일을 시작하자 빠르게 힘이 빠져버렸다. 아마 많은 사람이 쉴 땐 일하고 싶고, 일할 땐 쉬고 싶겠지. 나 역시도 그렇게 많이 쉬어놓고서는 다시 일을 그만두고 쉬게 되니 오랜만에 쉬는 것 마냥 마음이 편했다.


 사실 단지 쉬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잖아. 라고 합리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곧 내 무릎의 어마어마한 철심들을 빼기 위해 수술할 날짜가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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