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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Jan 17. 2021

[병원여정] 19. 철심 제거

드디어 끝이 보인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내 뼈는 생각보다 빠르게 잘 붙어주었다. 수술한지 6개월도 안되어 철심 제거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원래는 4월에 수술을 하기로 했지만 코로나 시국 때문에 미루고 미뤄 결국 7월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입원을 했었던 터라 오랜만에 다시 찾은 병원이 참 낯설었다. 입구에서부터 통제를 하는 것은 당연했고, 면회는 아예 할 수 없었으며 보호자조차 환자 보기가 쉽지 않았다.


 철심 제거 수술은 금방 끝났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떠 보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마쳤으니 철심제거 수술이야 우스웠다. 하지만 내가 수술하는 것을 처음 보는 남자친구는 수술실에서 나온 내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 직후의 나는 온 몸이 차가워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이를 떨었던데다가, 마취가 풀리자마자 수술 부위가 극도로 아프기 때문에 또 울부짖었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눈을 뜨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아파. 아파.”만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는 내가 많이 안쓰러웠는지, 남자친구는 놀란 눈을 하면서도 아프다는 말에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철심 제거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회복도 전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철심이 빠지고 나니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훨씬 부드러워진 기분이었다. 물론 여전히 걸을 때 아픈 건 마찬가지였지만.


 전에 입원했던 병실과 같은 층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는데, 병원 자체가 굉장히 크고 하루에만도 수많은 환자가 오가는 곳이기에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할줄 알았다. 그런데,


 “어, 혹시 환자분 저 아시지 않으세요?”


 한 간호사분이 날 알아보시기 시작하더니,


 “아! 환자분 맞죠? 그 오토바이?”


 “어머, 또 오셨네요. 제주도 맞죠?”


 하나, 둘씩 나를 알아보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늘어갔다. 알아봐주시니 감사했지만, 병실에서 큰 소리로 제주도에서 스쿠터를 타다가 사고났다는 얘기를 하셔서 조금 창피했다. 그래도 왠지 유명인사가 된것만 같아 나쁘지만은 않았다. 


 병원에서의 짧은 일주일이 끝났다. 이제 나는 다리에 철심도 더 이상 없고, 병원에 입원할 일도 없어졌다. 왠지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퇴원할 때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내 기분이 한없이 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앞으로 스쿼트같은 무릎 쓰는 운동은 절대 하지 마세요.”


 “등산 같은 것도 웬만하면 안하는 게 좋아요. 꼭 하고 싶다면 양쪽에 스틱을 잡고 하도록 하세요.”


 “계단 많은 곳은 자제하고 특히 계단 내려갈 때 조심하세요.”


 “남들보다 10년은 일찍 관절염이 시작될 겁니다. 그 때 고생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근육을 늘리고 체중관리 하셔야 해요.”


 “지금 철심을 뺀 자리에 아직 동그랗게 구멍이 남았어요. 이 구멍이 완전히 채워지려면 3개월이 걸리고, 단단해지기까지는 3년이 걸려요. 그러니 3년 동안은 뼈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6주 정도는 무릎이 조금만 스쳐도 아플겁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제대로 못움직이는 바람에 무릎 근육이 다 굳어버려서 조각조각 잘라놨기 때문이예요.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만 걸으세요.”


 하지 말라는 것은 왜 이렇게 많고, 조심해야 할 것은 더 많은지. 듣기만 해도 진이 빠졌다. 사고 난 뒤 희망적인 말만 듣다가 처음으로 안 된다는 말을 엄청 들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스쿠터 탄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한들 다리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만 했다. 내가 앞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한 편의 드라마처럼 결국 뛸 수 있을 정도로 다리를 원상복구 시킬 수 있을까. 모든 것에 자신이 없어졌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사라져갔다.


 매일 감정이 뒤섞였다. 하루는 감사하고, 하루는 죽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게 힘들 때 옆에 항상 누군가가 도와줬다는 것이다. 내가 SNS에 온갖 우울한 글과 사진들을 업로드하며 징징대고 티를 내면, 꼭 누군가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지금껏 SNS에 좋은 것, 자랑하고 싶은 것만 올렸지, 내가 힘들다는 글은 거의 올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시기를 거치자 내가 어떤 상황인지 남들에게 표현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티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준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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