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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Jan 21. 2021

[병원여정] 20. 그리고, 그 후...

이제 난 자유다.

 2021년, 이제 이 모든 사건은 해가 바뀌며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되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뛰지 못하고, 날씨에 따라 아프다 말다 하는 무릎을 익숙하게 움직인다. 


 이미 병원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히 나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환자분, 아니 이제 환자도 아니에요. 많이 움직이시고요. 이제 안 오셔도 됩니다.”


 “아, 네…”


 걸을 때마다 아직도 느껴지는 통증에 ‘뭔가가 잘못되면 어쩌나’ 무서워 한 걸음씩 조심히 내딛던 내가, 의사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로 용기가 생겨 자신 있게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무게가 지탱되는 순간의 짧은 고통이 왠지 운동 후의 근육통처럼 기분 좋게 느껴졌다.


 자유다. 이제 환자가 아니다.


 그 사실은 내 발에 묶여있던 무거운 족쇄 같은 것을 덜컹, 풀어버렸다. 


 다리는 전과 같았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아주 빠른 속도로 다리가 튼튼해졌다. 아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아프고 힘들다며 투정부렸던 것은 어쩌면 스스로 ‘나는 아픈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나를 옭아맸던 것이 아닐까. 


 먹구름이 물러가고 해가 밝아오듯, 나를 힘들게 하는 우울함이 가시자 따뜻한 평화가 찾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안정감이었다. 몇년 새 한 번도 이렇게 편안하게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쫓기듯이 뭔가를 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었다. 그것이 내 삶의 이유라고 여겼다.


 처음에는 교통사고가 그런 나에게 잠시의 휴식을 준 거라고 생각했다. 이 휴식이 끝나면, 나는 다시 돌아가리라. 예전의 활동적인 내가 되어서 다시금 이 일 저 일 벌리며 살아야지. 두 발 도약하기 위해 잠시 한 발 뒤로 물러 선 거야. 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의 몸은 이미 한 번 망가져 조심히 다뤄야 했고, 예전처럼 여기저기를 뛸 수도,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한강에서 자전거를 탈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나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전보다는 덜 활동적일 수 있지만, 훨씬 열정적으로 말이다. 하고 싶지만 겁이 나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 더 쉽게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웹툰을 그린다거나, 영화를 찍는다거나, 소설을 연재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난 언제나 ‘사랑을 전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황홀감, 아름다움, 기쁨, 사랑을 모두에게 똑같이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슬픔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슬픔이나 절망, 아픔, 괴로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깨달았다. 그 슬픔과 절망, 아픔, 괴로움이 없었다면 기쁨도, 사랑도, 행복도 모두 없었을 거라는 걸.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고, 또 어둠이 있기에 빛도 있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크게 다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절망스럽고 괴로운 마음을 평생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삶의 양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가 예술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이제 나는 행복해졌다. 이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특별한 추억을 갖게 됐다. 설령 또 우울함과 괴로움이 닥쳐와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것들이 있기에 내가 또다시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부정적인 감정이 날 지배할 때 억지로 떨쳐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로 잠시 나를 기다려줄 뿐이다. 그저 이 작고 소중한 우울함을 온몸으로 느껴줄 뿐이다.


 다리의 흉터와 맞바꿨다고 하기엔 너무나 단순한 인생의 교훈, 물론 대가 없이 얻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사실은 ‘시간이 지나 더 성숙해진 내가 해결해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아픔으로 성숙해졌나 보다. 성숙해진 나에게 고맙다. 아픈 나에게 고맙다.


오늘 하루도 잘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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