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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Nov 12. 2020

[병원여정] 03. 후회 안 해.

스쿠터 안 탔으면 나중에 또 탔을 걸?


 많은 사람이 병원 면회를 와 주었다. 그리고 다들 공통적으로 하는 말,


 “제주도는 이제 발도 들이기 싫겠다. 그치?”


 완전히 아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여행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엄청난 미련이 남아 있었다. 특히 첫째 날 저녁에 도착했던지라, 둘째 날이 여행의 시작이었는데 하필 둘째 날 아침에 사고가 난 것이다. 제주도에서 본 거라곤 내가 탄 스쿠터와 바다, 숙소 뿐이었다. 


 “스쿠터 탄 거 후회하지 않아?”


 그것도 아니다. 사실 어찌보면 철 없는 생각일테지만, 나는 스쿠터를 탔다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물론 이제는 트라우마 때문에 스쿠터 근처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지만, 만약 내가 이번 여행에서 스쿠터를 타지 않았다면 과연 앞으로도 쭉 안 탄다는 보장이 있을까?



 나는 늘 자유를 갈망하고, 반항적이고, 겉멋이 잔뜩 든 사춘기 소녀같은 사람이다. 스쿠터가 탈선의 지표는 아니지만 왠지 자유롭고 멋있어보이는 효과가 있기에 나는 그저 멋있게 스쿠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도가 아니었어도 무조건 한 번은 스쿠터를 타 봤을 것이고, 비록 사고는 났지만 나는 멋있었고, 자유로웠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그 맛을 한 번 봤으니 됐다. 만족한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여행이었다. 4년간의 연애를 마무리 하고 오롯이 나 혼자만의 일상생활을 다시 만들어 가고 있던 와중에, 지하철 성추행과 여러 안좋은 사건들이 겹쳐 극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그런데 정신과 상담을 받다 보니 뜬금 없이 우울증이 아닌 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어떻게든 이 병을 피하고자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결국 도망치듯 제주도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생각도 정리할 겸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간 여행에서 더 아픈 몸을 가지고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당시 사고 상황을 기억하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억을 끄집어 내 가면서 기록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입원 생활 동안 깨달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오롯이 내 생각만 하면서 6개월 가량을 쉬다 보니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 가뜩이나 생각이 많은 내가 더 깊이 깊이 마음 속을 파고들면서 ‘나’를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그 때 눈물을 터뜨리며 다짐했다. 나와 같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기로. 내가 선생님도 무엇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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