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4살 무렵, 아침에 8시 전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하고 나가야 했다. 첫째가 다녔던 어린이집도 그렇고 보통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9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맞벌이의 경우 부모의 출근 시간에 맞춰 더 일찍 등원하는 아이들도 있고, 좀 늦게 등원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린이집을 가기 위해 늘 아침에 곤히 잠든 아이를 깨우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좀 더 자게 하고 싶어서 혼자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가면 등원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늦게 됐다. 늦게 가도 상관은 없지만 어린이집에도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놀이 시간 중간에 들어가게 되면 아이들은 어색할 수 있다. 친화력이 좋고 숫기가 좋은 아이들은 어느 시간에 들어가도 잘 놀 수 있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놀이 중간에 합류하는 게 힘들 수 있다. 또 늦게 일어나 늦게 등원을 하게 되면 낮잠 시간에 아이가 잠이 안 온다. 다른 친구들은 일찍 등원을 해서 모두 낮잠을 자고 있는데 늦게 일어나서 늦게 등원을 한 아이는 혼자 멀뚱하게 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제 시간에 맞춰 등원을 해서 어린이집 스케줄에 맞게 아이가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론상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어린 영유아기 아이들의 경우 생활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9시까지 등원하는 스케줄, 혹은 더 일찍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스케줄이 아이들에겐 힘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등원 시간은 아이 개개인이 아닌, 일하는 부모의 생활 패턴에 맞춘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를 여는 아침에 모든 일과가 시작되는 게 맞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마다 신체 리듬이 다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특히 아직 발달 단계상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는 의지나 당위를 이해할 수 없는 영유아기 아이들의 경우 더 그렇다.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만 되어도 스스로 알람을 맞춰 일어나거나 학교에 가야 하기에 조금 피곤해도 참을 수 있는 자제력이 생긴다. 그러나 아직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덜 발달된 영유아기 아이들의 경우는 다르다. 자신이 왜 일어나야 하는 지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명해도 먹히지(?) 않는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게 통하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먹고 자는 등의 본능과 감정의 뇌가 상대적으로 더 발달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잠을 푹 못 자거나 하고 싶은 걸 못할 때는 일단 짜증을 내는 게 영유아기 시기의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아침 잠이 많은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 수도 있다. 자신들의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울거나 짜증을 낼 가능성이 높다. 당연한 현상이다. 그게 그 연령대 아이들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도 그랬다. 좀 더 자고 싶은데 억지로 깨우면 아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뭐라고 하나 먹이는 건 더 힘들었다. 스스로 옷을 입고 양말을 신을 수 있는데도 바닥에 드러누워 딴청을 하기도 했다. 억지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야 하기 때문에 혼자 해 낼 수 있는 일들 조차 부모가 대신 해줘야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에 놀러 나가자고 하면 옷을 거꾸로 입을지언정 늘 1등으로 준비하고 현관에 서 있는 아이인데 말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뭐든 즐거워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이다. 매일 아침 아이와 승강이 하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직 자고 있는 둘째까지 깨워 나가면 늘 집안은 울음 바다가 되는 상황을 겪으며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아침마다 이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나게 하고 싶었다. 결국 난 그 누구도 아닌 내 아이들의 패턴에 맞추기로 했고, 4세 때 잠시 다니던 어린이집 퇴소를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스케줄이 만들어졌다. 패턴은 늘 일정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 늦게 자면 아침에 혹은 낮잠으로 아이들은 스스로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 기분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들은 놀이를 하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했다. DVD를 보기도 했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기도 했다. 그렇게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것에 마음껏 몰입 하게 됐다. 찰흙놀이를 할 때나 종이접기를 할 때 다음 스케줄이 없으니 하다 질릴 때까지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을 뿐인데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고 화 낼 일이 줄어들었다. 생각해 보니 ‘일찍 자라’ ‘빨리 해라’ ‘늦겠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 등등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의 대부분은 ‘시간에 쫒겨서’ 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의 시간을 따라갔을 뿐인데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여유롭고 자유로워졌다.
‘여유로운 시간’과 더불어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정서적 안정감'이었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난 후 한 달 간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서 정서적으로 다소 불안한 시기를 보냈다. 당시 첫째가 18개월이었는데 언어가 서툰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하니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매일 밤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고 하니 아이의 불안한 마음이 짐작이 간다. 한 달 간의 산후조리 후 내가 집에 왔을 때, 첫째는 나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둘째 젖을 먹여야 하니 친할머니가 첫째를 데리고 가서 돌봐주려 하시자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발버둥을 쳤고 나중엔 할머니만 봐도 데리고 갈까봐 내 뒤에 숨곤 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으며 첫째는 심리적 불안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4살에 시작한 기관 생활에서 역시 초반에 겪은 선생님의 부재는 아이에게 또 한번의 불안감을 안겨줬다.
첫째를 낳고 나서는 몰랐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상황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 지, 얼마나 큰 공포감을 주는 지 말이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John Bowlby, 1907~1990)는 초기의 애착형성이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고, 애착형성이 잘 되지 않으면 아동기뿐 아니라 성인기의 여러 가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애착이론을 정립했다. 애착 형성은 아이의 인생 초기에 부모가 꼭 챙겨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애착에 대한 여러 서적들을 보면서 첫째가 엄마와 떨어지며 겪었던 아픔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졌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당시 육아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둘째마저 태어나면 이제 나의 자유는 끝이다’라고 생각하며 시댁에 첫째를 맡기고 싱가포르로 여행을 갔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산후 조리원에서 2주, 친정에서 2주를 머물며 첫째와는 떨어져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빨리 회복해서 첫째와 만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지만 그건 무지로 인한 실수였다.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첫째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스케줄을 짤 것이다. 여행을 간다면 함께 가고 산후 조리원 대신 집에서 산후 조리를 할 수 있도록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물론 첫째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첫째에게 너무 미안했다. 엄마가 육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서 내 아이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다. 그래서 석고대죄의 마음으로 다 큰(?) 애를 어느 기관에도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육체적으로 많이 고단했지만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에 어떤 면에서 마음은 가벼웠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이 좋고 저 방법은 나쁘고 그런 건 없다. 유대인은 ‘100명의 학생이 있으면 100명의 정답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 늘 정답을 찾는 교육을 받아온 우리로서는 인생에도, 육아에도 어쩌면 정답이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좋으면 그게 정답이고 그게 옳은 결정이다. 설사 남들이 보기에 틀린 것처럼 보일 지라도 말이다. 나와 아이들은 그렇게 우리들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