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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10. 2021

맨발로 놀 수 있는 권리

오늘도 두 아이들은 맨발로 흙 놀이를 한다. 다행히 집 앞 놀이터에는 흙장난을 할 수 있도록 흙을 보존해 놓은 공간이 있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놀면 몇 시간이고 논다. 옆에 수돗가가 있어 물을 이용해 진흙을 만들어 이것저것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길을 내 수로를 만들기도 한다. 멋진 창착활동이 따로 없다. 봄 여름에는 싹을 심고 정원이라고 하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심고 묘목을 심었다고 하기도 한다. 돌과 낙엽으로 모래 케이크 위에 예쁘게 장식을 하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꺼비 집을 만들고 부수기를 수십 번 해도 아이들은 질려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계속 놀이를 만들어낸다. 단지 물과 흙만 있을 뿐인데 말이다.


<기적의 유치원>에 소개된 일본의 세이시 유치원에서는 발은 '제 2의 심장'이라는 철학 아래 모든 아이들이 맨발로 마당과 운동장을 누빈다. 아이들에게 매일 흙을 밟고 놀게 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매일 아침 깨끗한 진흙을 준비해 놓고 아이들과 뒹굴며 논다. 아이들이 흙을 밟고,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러는 것이다. 세이시 유치원 이야기를 읽고 '내 아이가 저런 유치원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 일본에 잠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맹모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동네에서 세이시 유치원과 비슷한 환경의 유치원을 찾았다. 우레탄 바닥이 아닌 여전히 흙이 깔려 있는 놀이터와 세이시 유치원처럼 늘 아침에 흙을 깨끗하게 준비해 놓는 흙놀이터가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흙을 계속 파며 놀기도 하고 물을 섞어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며 놀기도 했다. 하원 후에는 유치원 문 닫을 때까지 흙을 쌓고 무너뜨리고 창작 활동을 하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흙과 물. 이 두가지만 있으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논다. 하루는 집 앞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는데 맨발로 하고 싶대서 그러라고 했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 흙 밟고 노는 건 일상이었는데 30년이 지난 요즘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도심에서 흙을 밟기 쉽지 않다. 모두 아스팔트 바닥이거나 정돈된 벽돌 바닥이다. 그렇다보니 부모들도 흙장난을 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예쁘게 입힌 옷이 지저분해지고 빨랫감이 늘어나며 운동화나 구두도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기적의 유치원을 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도 "무슨 맨발이야! 그냥 신발 신고 놀아."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연의 일부인 흙, 모래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알고 난 다음에는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하는 편이다.


 모래밭에서 맨발로 놀더니 두 아이가 이젠 활동 범위를 넓혀 맨발로 놀이터를 누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신발을 신는 것보다 맨발로 노는 게 이론상으로는 더 좋다. 게다가 온 신체가 집약되어 있는 발을 자극하게 되면 두뇌도 더 좋아진다. 그런데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는 동네 어른들이 걱정을 하셨다.


"뾰족한 거 찔릴라, 신발신고 와"


할머니에게 이 얘길 들은 첫째는 시무룩해져서 나에게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맨발로 놀고 싶은데 할머니가 신발을 신고 오라고 해서 속상하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할머니께 갔다.


"아유, 신발을 신겨야지. 바닥도 딱딱하고 저긴 위험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맨발로 놀고 싶어해서요. 뾰족하거나 위험한 건 제가 보기에 없어서 원하는대로 하게 했어요. 감사합니다."

"엄마가 애들을 군대식으로 아주 씩씩하게 키우는구만"


칭찬인 지 아닌지 다소 헷갈렸다. 칭찬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날은 막대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보며 "긴 막대는 위험하다. 저기 두고 놀아" 라고 말씀하신 어른들이 있었다. 나뭇가지를 가지고 노는 게 위험한 세상이 됐다. 물론 아이들이 뾰족한 것에 찔리거나 다칠까봐 하시는 염려의 목소리라는 건 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탐색하며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그 기회를 어른들의 염려가 빼앗아가는 건 아닐까.


예쁘고 깔끔하게 정제된 장난감, 알록 달록 형형 색색의 교구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장난감을 쥐어 준다. 그러나 오히려 안전하다고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것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중국에서 만든 어린이 장난감에서 납, 카드뮴 등의 성분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보기에 예쁘고 형형색색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광고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지갑을 열게 하지만 그게 우리 아이들을 서서히 병들게 할 수도 있다. 사탕수수 원당의 단맛은 몸에 좋지만 정제된 백설탕이 혈 중 당 농도를 급격히 올리고 몸에 안 좋은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여전히 자연의 것들보다는 인공적인 것들을 선호한다. 그게 예쁘고 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흙바닥에서 뒹굴며 노는 것 보다는 깨끗하게 예쁘게 점잖게 놀기를 바란다. 아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참 슬픈 일이다.


우리가 어릴 때 놀던 것처럼, 아이들이 흙을 밟고 놀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아이들이 맨발로 흙을 밟고 놀아도 웃으며 바라봐 줄 수 있도록 부모의 열린 마음이 먼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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