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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10. 2021

상대의 기질,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몇 년 전, 한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라는 것이 오르내린 적이 있다. ‘기질’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확 끌렸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기질이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형질’로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기질 테스트라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배우 신애라 씨가 출연진들에게 각자의 기질 테스트를 해 준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고등학생 때 MBTI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는 히포크라테스가 다혈, 담즙, 우울, 점액이라는 형질을 바탕으로 사람의 기질을 12가지로 나눈 테스트였다. 테스트 결과는 흥미로웠다. 4명의 출연진이 모두 각기 다른 기질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애라 씨가 그 결과를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중에서 나는 출연진 중 이승기 씨와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다혈이 가장 높았고 담즙과 우울이 그다음으로 높다. 외향적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편하게 느끼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지배, 성취, 목표, 달성 등과 같은 것이 어울리는 단어라고 했다. 다양한 활동과 재미를 추구하고 공동 작업이 잘 어울리는 형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탤런트 이상윤 씨는 이승기 씨와 정반대로 나왔다. 이승기 씨가 가지고 있는 기질은 아예 없고 반대로 우울과 점액의 기질이 높게 나타났다. 이 매우 꼼꼼하고 비교적 느리며 깊이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분석적인 기질이 높아 탁월한 전문가형이라고 했다. 그런데 신애라 씨의 설명을 듣는데 이상윤 씨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무래도 시청자들에게 오락이나 재미를 선사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자신의 기질에서는 버겁고 잘 안 맞았을 것이다.


“지금 충분히 멋있고,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이상윤 씨는 이 팀의 쉼표 같은 거예요. 만약 이상윤 씨가 없었다면 이 팀은 지금 이 모습이 아니었을 거예요. 내가 지금 팀에 피해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그 모습 자체로 너무 멋져요.”


신애라 씨의 말을 듣는데 나조차 울컥했다. 신애라 씨 역시 남편 차인표 씨와 성향이 너무 달랐지만 심리를 공부하면서 상대방을 훨씬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세상에 '나쁜' 기질은 없으며 단지 '다를 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신애라 씨 역시 이러한 공부를 통해 아이들과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서 내 남편은 아마 탤런트 이상윤 씨와 기질이 비슷하게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테스트 내용을 뽑아 남편이 퇴근한 후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예상대로 남편은 이상윤 씨와 같은 기질로 나왔다. 나와는 ‘우울’이라는 성향이 좀 겹치긴 했지만 나머지는 정 반대의 성향이었다.


남편은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다. 매사에 진지하고 분석적이고 계획적이며 꼼꼼하다. 아마도 자신의 기질과 적성에 맞게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다. 나보다 손이 두껍고 뭉툭한데도 작고 섬세한 작업들을 훨씬 잘 해낸다. 그 뭉툭한 손으로 매일 스포이드를 이용해 세포 실험을 하고, 작은 쥐의 정맥에 주사를 놓는 실험 등을 잘도 해낸다. ‘우울’ 형질의 감성적인 기질은 비슷해서 사진을 찍는 것, 글을 쓰는 것, 음악을 들으며 쉬는 것 등은 나와 비슷하지만 그것 마저도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다. 외동아들에 개인주의적 성향을 타고난 남편은 종종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뭐든 같이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한 성향 차이 때문에 참 많이 다퉜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그 성향을 존중한다. 그리고 나 역시 닮아가는지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이들이 곤히 자는 시간에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남편이 말을 걸면 성가실 때가 있다. 부부가 닮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남편의 테스트 결과를 보면서 이상윤 씨의 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같이 살면서 다른 성향 때문에 힘들 때가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하고 싶은 건 하는 스타일이다. 원하는 건 해야 직성이 풀린다. 살다 보면 그러한 성향 덕에 쟁취하고 싶은 많은 목표들을 이루고 살았던 것 같다. 아나운서가 되어 꿈을 이뤘던 것도 운이 따랐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기질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어린이집을 그만두었을 때도,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나는 ‘다혈’ 기질이 가장 높게 나왔는데 남편은 이 기질이 심지어 하나도 없었다. 쾌활하고 사교적이고 표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이런 기질이 남편에게는 아예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남편은 표현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고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다. 늘 나 혼자 떠들고 남편은 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들으면서도 그 흔한 리액션 하나 없다. 그러다 보니 난 그게 늘 불만이었다. sns 메시지도 ‘응’ ‘퇴근해요’ ‘점심 잘 먹어요’ 등 한 줄을 넘어가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이 편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내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마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때론 화가 났다. 특히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출산하고 육아에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아무런 표현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났다. 하루 종일 아기와 베이비 토크만 해서 대화가 그리운데 남편은 늘 특별히 말을 하고자 하는 욕구도, 리액션도 없었다. 그러면 나는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하며 언성을 높였고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러면 남편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내가 뭘 잘 못했는데?”를 부르짖곤 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 결과를 보며 조금이나마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재미가 없는지, 내가 말을 했을 때 반응은 왜 그렇게 뜨뜻미지근 한지, 왜 이렇게 매사에 진지한지 등 말이다. 남편에겐 ‘다혈’의 기질이 없을 뿐이다. 재미를 추구하고 열정적이며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다혈’의 기질이 없기에,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반면, 나에겐 순응하고 평온하고 감정을 억제하고 심지어 과묵한, 남편의 모습인 ‘점액’이 가장 낮게 나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남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 테스트 결과를 본 후 ‘아이들 역시 나와 다른 기질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막연히 나와 기질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언어적인 면이 빨리 발달했다는 점과 식성,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 등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반면, 둘째는 식성이나 외모 등이 아빠와 닮았고 수면 패턴 등이 남편과 비슷했다. 그렇게 ‘아들은 엄마, 딸은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라고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를 해 본 이후 아이들의 기질과 성격을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는 사람의 기질을 12가지 유형으로 나누지만 또 다른 성격 검사인 mbti는 16가지로 나눈다. 그러나 지구 상에 있는 70억 인구의 유형을 12가지, 16가지로 나눈 것도 편의를 위한 것이지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간의 유형들이 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 나와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은 나의 반쪽이 아니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나의 분신이 아니다. 엄연히 나와 다른 존재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과, 자녀와 갈등을 빚는다. 결혼할 때 죽고 못 살던 남편은 남의 편이 되고 자식은 원수가 된다. 나와 다른 기질을, 성향을,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에 들기 원하는 그 욕심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 모습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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