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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10. 2021

내 아이는 난초 일지 모른다.

기질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


첫째는 돌 전부터 몸의 움직임이 굉장히 많았다. 좋다는 표현을 할 때는 팔다리를 굉장히 크게 흔들었고 싫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3살 때는 길에 지나가는 이웃들을 보고 크게 인사를 하고 처음 만난 놀이터 친구들과도 비교적 잘 지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아이가 외향적인 아이겠구나 라고 짐작했다. 반면, 둘째는 첫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움직임이 없었다. 돌이 지나니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잠이 잘 들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깨지 않았다. 같은 반응을 줘도 첫째는 까르르 웃는 반면 둘째는 상대적으로 덜 했다. 한 마디로 어떠한 자극을 줬을 때 반응이 느리고 적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가 내향적이거나 조용한 아이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성격 테스트를 하면 늘 외향적이고 사교적으로 나왔고, 남편은 내향적이고 조용하며 분석적인 기질로 나왔기에 ‘첫째는 나를 닮고 둘째는 아빠를 닮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째가 네 돌 전후로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웃을 만나 씩씩하게 인사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부끄럽다며 내 뒤에 숨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서 놀 때도 상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거절당하면 매우 속상해했다. 나는 아들의 이런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나를 닮았다면 친구들과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누구와도 잘 지내야 하는데,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나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은 놀이터에서 성향이 다른 친구들과의 갈등에서 오해하지 않게 이해시키는 데 진땀을 뺐다. 반면, 조용해 보이던 둘째는 점점 더 활동적인 성향을 보였다. 오빠와 함께 놀아 그런 것도 있겠지만 목소리도 굉장히 크고 유치원에서는 남녀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했으며 놀이터에서는 여기저기 올라가고 매달리는 등 활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에 혼란스러워할 때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바로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이들의 기질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았다.


20 세기가 낳은 위대한 발달심리학자인 제롬 케이건은 1989년에 시작되어 아직도 진행 중인 연구를 위해 하버드대학교 아동발달 연구소에 4개월 된 신생아 500명을 모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세심하게 선별한 자극에 노출했다. 아기들은 녹음한 목소리와 풍선 터지는 소리를 듣고, 색색의 모빌이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 또 알코올에 묻힌 면봉 냄새를 맡는 등 새로운 자극에 노출됐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약 20%는 기운차게 울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케이건은 이 그룹을 ‘고 반응’이라고 불렀다. 반면 약 40%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있으면서 때로 팔다리를 움직이긴 했지만 반응의 정도는 작았다. 나머지 40%는 양 극단의 중간에 있었다. 케이건은 이 그룹을 ‘저 반응’으로 불렀다. 이를 볼 때 첫째는' 고 반응' 쪽에, 둘째는 '저 반응'그룹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건은 반응이 강한 고 반응 군의 아이들이 십 대가 되어 조용한 아이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추적 조사 결과, 상당수의 아이들이 케이건의 예측대로 되었다. 즉, 반응이 강한 아이들은 외부 자극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반면, 반응이 약한 아이들은 외부의 자극에 덜 민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고 반응과 저 반응은 각각 '내향성'과 '외향성'과 연결된다.


4개월짜리 아기가 소리나 냄새 등의 자극에 대해 팔다리를 크게 휘저었던 것은 외향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이나 자극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용했던 아이들은 내향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 아이들의 신경계가 새로운 것에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볼 때 고 반응성의 아이들은 낯선 환경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좀 더 경계하거나 조심스러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등과 같이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과 지내야 하는 환경이 저 반응성 아이들보다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고, 아이들의 성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첫째는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민감하고 섬세하다. 위의 연구 결과에서 보듯, 대부분의 자극에 강하게 반응한다. 작은 것에도 굉장히 즐거워하고 크게 웃는다. 노래가 나오면 즐거워서 몸을 흔들고 자신의 기분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반면 자신의 의견이 거절당하거나 부정당하면 많이 속상해하고 풀이 죽는다. 소리나 냄새, 추위 더위 등에 민감하다. 혀의 감각도 예민해서 조금만 매워도 먹기 싫어한다. 처음 기관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선생님께서"긴장도가 높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참관실에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토를 한다든지 잘 못 먹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 역시 예민하긴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덜 민감한 편이었다. 특히 누우면 바로 잠들고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소리를 크게 내도 깨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신기했다. 유치원에서도 첫째와 같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는데 '오빠와는 성향이 좀 다른 것 같다'라고 하시며 '긴장도도 낮고 모든 친구들과 다 두루두루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다. 첫째를 키우며 아이는 다 이런 줄 알았는데 둘째의 다른 면을 보고 참 놀랐다. ‘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아롱이다롱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 지 온몸으로 실감했다.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도브스는 ‘난초 가설’이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어떤 아이들은 민들레와 같아서 어떤 환경에서나 잘 자랄 수 있지만, 케이건이 연구한 반응성이 높은 아이들을 비롯한 어떤 아이들은 '난초'와 유사하다. 쉽게 시들지만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강하고 근사하게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고 나의 아이는 난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하고 민감한 기질의 나 역시 그렇고 말이다. 그렇다면 난초가 근사하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면 아이가 근사하게 잎을 뻗어내고 꽃을 피워 낼 수 있는 강한 마음 근육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기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첫째의 기질은 불편하고 까다롭고 성가신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둘째는 순둥이라며 좋아했을지 모른다. 그건 어쩌면 싹을 틔우지도 못한 내 아이의 귀한 기질과 재능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고 나쁜 기질은 없다. 각기 다른 기질만 있을 뿐이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땐 고 반응성 아이들의 기질이 부모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과정들을 겪었기에 안다. 컵도 자신이 원하는 색깔로 꼭 먹어야 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은 본인이 꼭 눌러야 하며 옷에 달린 상표도 거칠다고 싫어해 가위로 다 잘라야 했다. 때로는 그런 요구들이 너무 벅찼다. 그리고 나의 예민한 기질을 왜 닮아서 나를 힘들게 하나,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원망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나 기질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서 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부모라면 꼭 알아야만 한다. 내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아이는 자신의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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