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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10. 2021

낮은 자존감, 아이에게 쏟아붓는다

오랜만에 친했던 직장 동료 언니를 만기로 했다. 세무 전문가로 일했던 언니는 얼굴도 예뻤고 무엇보다 마음씨가 고왔다. 늘 옆 사람을 배려했고 챙겼다. 정글 같은 직장에서 심적으로 의지하며 버틸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언니는 출산 후 3개월 만에 바로 복직을 했다. 육아 휴직만 쓰고 바로 복직을 한 것이다. 워낙 회사에서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것 같다고도 했다. 경쟁의 세계는 살벌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회사로 갔다. 대리석 건물이 나를 맞이했다. 나도 예전에 이런 건물에서 사원증 목에 걸고 하이힐에 정장 입고, 하늘을 찌를 듯 아찔할 속눈썹을 붙인 채 당당하게 워킹하던 때가 있었는데. 순간 나의 옛 모습이 머릿속에 지나간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두 아이를 따라다니기 바쁜 아줌마일 뿐이다.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언니는 여전히 고운 모습이었다. 각 잡힌 정장과 시폰 블라우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의 자태는 누가 봐도 멋진 워킹 우먼의 모습이었다. 애만 옆에 없으면 누가 애 엄마라고 생각하겠나 싶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아직 순순했던 시기에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만난 인연이라 그런지 긴 시간 못 만났지만 그저 편하고 좋았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언니는 아이들 주라며 큰 홀 케이크 하나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아이들 줄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도 처음 만난 이모지만 친근하게 느꼈는지 이것저것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들 하나 있는 언니는 딸을 보며 ‘너무 귀엽다’며 ‘또 낳을 자신은 없지만 이런 딸 하나 있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이들이 잘 노는 동안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회사 분위기 너 있을 때랑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사이에 되게 많이 변했어.”

“왜?? 어떻게 변했는데?”

“요즘 워라밸, 이런 말 많이 나오잖아. 일과 삶의 균형 뭐 이런. 그래서 퇴근 시간 되면 경고 문구가 떠.

빨리 퇴근하라고.”

“진짜?? 와.. 상상이 안되는데??”

“그렇지, 나 같은 워킹맘들은 이제 좀 좋긴 하지. 눈치 보며 퇴근 못하고 그런 일은 이제 거의 없으니까. 근데 요즘 신입들한테 우리 일하던 시절 얘기하면 꼰대 소리 듣는다? 어머 그러고 어떻게 살아요~ 다들 이래. 우리 때랑 많이 다르지”


꼰대는 나이 들어 자신만의 아집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70, 80대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라테는 말이야~ ”라는 말을 하면 꼰대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되어 있었다. 일례로 얼마 전 있던 일인데 근로기준법 위반을 근거로 아래 직원이 상사를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고발당한 주인공(?)은 내가 회사 다닐 당시, 여자 직원들에게 롤 모델이 되었던 유능한 여자 선배였다. 그런데 이제는 워 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의 희생량이 되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참 아프게 들려왔다.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려는 좋은 정책의 취지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급격한 나머지 소화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게 우리 세대라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아이들의 집중력은 점점 흐려지고 언니 역시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기에 아쉽게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집으로 오면서 딸내미는 잠이 들었다. 아들 녀석도 잠이 들겠지 기대했지만 잠이 들기는커녕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모습이었다. 아들 녀석이 잠들 때까지 차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집 주변을 뱅뱅 돌았지만 잠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 녀석도 같이 잠이 들면 내가 좀 쉴 수 있을 텐데. 잠을 안 자려고 기를 쓰고 버티는 그 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잠이 든 딸내미를 눕히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아들 녀석이 색종이와 가위를 들고 온다.


“엄마, 우리 그림 그리고 놀아요.”

“엄마 지금 옷 갈아입고 좀 쉴 거야. 지금 모두 쉬거나 자는 시간이니까 낮잠 안 잘 거면 혼자 가서 놀아.”


자라는 말이 싫었는지 조용히 혼자 가서 그림을 그리고 가위로 오리고 논다. 옷을 갈아 입고 거실로 나왔는데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아이들이 접고 오리고 놀던 색종이는 여기저기 널려 있고 아무 데나 벗어 놓은 빨래며 읽고 꽂지 않은 책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다. 부엌도 식탁 위가 너저분하다. 장난감이 몇 개 올라와 있고 책이며 펜이며 바나나에 냄비 등등. 집 안 모습을 보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또각또각 하이힐 신고 방송하던 시절엔 내가 이렇게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에 쌓여 살 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교육받고 입시 치르고 죽을 만큼 노력해서 취업하고 직장 생활하는데 육아나 가사에 있어서는 여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워킹맘도 그런데 전업맘은 오죽하랴. 단어만 봐도 피할 수 없는 전업맘의 포스. 전업 맘은 전업으로 집안일을 하라는 건지 뭔지. 요즘은 남자가 가사와 집안일을 전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는데 왜 여자에게만 유독 전업맘, 직장맘, 워킹맘을 붙이는 건지. 전업 대디, 워킹대디라는 말은 없잖아? 아무리 치워도 티 안나는 집안일에 정리정돈을 하면서 쓸 데 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청소가 끝나면 또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 저녁은 또 뭘 해 먹나. 일단 국 하나는 있고 냉장고와 냉동실에 있는 음식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이 와중에 아들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먼저 저녁을 차려줬다. 반찬도 없어 가장 만만한 계란 프라이에 간장 한 두 방울 떨어뜨려 간장 계란밥을 해줬다. 배가 고팠는지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선물 받은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그러고는 옷을 다 벗고 뛰어다니다 또 엄마와 놀고 싶다고 치근덕(?) 댄다.


‘제발 좀 혼자 놀아라. 나한테 오지 좀 말고!!!’


턱 밑까지 올라오는 말을 겨우 참았다. 외출하고 온 데다 뭔가 모를 상실감이 느껴져 좀 쉬고픈데 아이들은 내 맘모르고 또 들러붙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다리로 칭칭 감아 못 움직이게 하고 “갇히기 놀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나중엔 아팠는지 막 소리를 지르며 운다. 간지럼을 태우니 울다 웃다 난리가 났다.


“그러니까 가서 좀 놀아~!! 엄마 좀 쉬게”


아들은 그렇게 울다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갑자기 헛 구역질을 했다. 밥 먹고 흥분한 상태에서 내가 너무 자극을 준 것 같았다. 결국 저녁 먹은 것부터 간식까지 모두 토해냈다. 그것도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두세 군데에 나눠서 속에 있는 걸 다 뿜어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는커녕 화가 났다. 기껏 힘들여서 저녁에 간식까지 해주고 집까지 치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여기저기 토해서 또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다니.


“야! 토하려면 화장실에 가서 토해!!”


아들 팔을 억지로 잡아끌고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변기에 대고 헛구역질을 하는 아들 등을 마구 쳤다. 속에 있는 거 나오라고 살살 쳐주는 게 아니라 감정적인 화풀이였다. 아이의 그 작은 등짝을 세차게 쳤다. 아이는 꽥꽥 거리며 울음을 토했는데 이미 거실에서 다 토했는지라 더 나오는 건 없었다.


“야, 어서 손이랑 입 닦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심하게 장난치래! 그러니까 다 토하잖아!”


나는 아이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낮잠도 안 자서 쉬지도 못하고 저녁도 다 토하고 일거리만 만드는 아이가 그 순간 너무 미웠다.  난 나의 감정을 아이에게 그대로 쏟아냈다.


“아까 낮잠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그럼 이렇게 토하고 그런 일 없었을 거 아냐! 어서 자!”


두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껐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흐느꼈다. 누워 있는데 화가 나면서도 아이도 안쓰럽고 나도 안쓰럽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고 너무 서글펐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힘든 걸까. 밑도 끝도 없는 집안일과 끝이 안 보이는 육아. 오늘은 내 처지가 더 서글퍼지며 한 없이 마음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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