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좀 보세요?"
과일을 깎고 있는데 어느샌가 첫째가 화장실 두루마리를 몸에 둘둘 말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이 쪽을 살짝 올리면 말할 수 있는 거라고 구체적 설명까지 덧붙인다. 둘째는 오빠 몸에 있는 휴지를 잡아 당기며 까르르 웃다가 둘이 또 소리를 지르며 거실로 달려간다. 또 어느 날은 옷장에 있는 이불을 다 꺼내 바닥에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고 침대에서 점프를 하며 까르르 웃고 침대나 소파 위를 사정 없이 뛴다. 소파는 하도 뛰어서 가죽이 이미 찢어졌다. 그리고 이불은 둘둘 말아 김밥이라고 하며 놀고 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어이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행동이 대부분이다. 세면대 위에 올라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했고 목욕 한다고 욕탕에 들어가서는 비싼 샴푸 다 짜 놓고 거품 목욕 하고 있다고 해서 나를 분노케 하기도 했다. 거기에 휴지가 녹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휴지 한 통을 다 욕조에 풀어 놓아서 녹은 휴지 꺼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또 어느날은 두루마리 휴지를 다 풀어서 백두산을 만들었다고 와서 보라고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거실 미끄럼틀에 물을 부으며 실험을 한다고 하기도 했다. 또 기찻길을 만든다며 거실 바닥을 휴지로 장식하곤 했다.
처음엔 이런 모습을 보며 기발하다고 엄지를 치켜 세워주기도 하고, 하면 안된다고 좋게 타이르기도 하다가 인내심이 한계에 이를 땐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결같이 너무도 즐거웠 했다. 나는 부글 부글 끓어 얼굴이 벌개지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둘이 깔깔대고 웃으며 도망가는 모습에 나도 어이 없어 풋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이들은 어른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다른 것 처럼 어른과 아이 역시 목성인과 토성인처럼 다르다는 것을. 부모와 아이가 대립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목성인 부모는 토성인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엉뚱하고 부주의하고 황당하고 산만한 아이들의 행동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고 '왜 그렇게 정신사납게 구냐'고 '왜 그렇게 시끄럽냐'고 나무란다. 그러나 토성인 아이들에게는 그게 정상이다. 엉뚱한 게 아니라 '기발한 것'이고, 황당한 게 아니라 '창의적'인 것이고, 산만한 게 아니라 '호기심이 많은 것'이다. 가만히 못 있고 정신 사나운 게 아니라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고, 시끄러운 게 아니라' 발성이 좋은 것'이다.
토성인 아이들이 목성인 부모가 바라는대로 조용히 얌전히 있다는 건 아이가 어딘가 아픈 것이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꾸 토성인 아이들을 목성인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다. 뛰지 말아라, 조용히 말해라, 가만히 좀 있어라, 왜 휴지는 이렇게 풀어 놨느냐, 장난감은 왜 얌전히 가지고 놀지 왜 다 분리를 해 놨느냐, 더러운 쓰레기는 왜 만지느냐, 빨래를 왜 던지냐, 등등 늘 아이들에게 훈계를 늘어 놓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은 몸으로 부딪치고 뛰고 만지며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이 그 모든 걸 막고 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시끄럽다는 이유로, 방해된다는 이유로.
토성인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려면 토성인의 특성을 파악하여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 아이들의 본성이 잘 자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아이들의 타고난 천재성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라고. 토성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뭐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냥 놔두면 그 자체로 천재인 아이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에서도 아이들은 물과 흙만 가지고도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나뭇잎과 나뭇가지만 있어도 아이들은 그새 자신들만의 놀이를 만들어서 논다. 목성인 부모는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간다. 아이들의 이러한 천재성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토성인 아이들의 특징을 파악해서 그들의 특성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것만이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