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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Sep 22. 2021

30년 전 아침 조회 시간을 회상하며

교육의 목적은 국가를 위한 것인가, 개인을 위한 것인가.

아침 8:40 등굣길 차 안.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어! 이거 엄마가 좋아했던 곡이다~"


멜로디는 익숙한데 곡의 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곡이었지?'

곡의 제목을 알기 위해 마지막 음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나고 나오는 라디오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네. 지금 들으신 곡,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었습니다. 아침에 들으니 더 활기차기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곡처럼 여러분의 오늘도 위풍당당하게 활기찬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제야 '아! 맞다'라는 생각과 함께 내 무의식 깊은 곳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 한 조각들이 어렴풋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이 곡은 무려 30여 년 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로 나의 시계를 돌려놓았다. 때는 1990년대 어느 월요일 아침.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전교생에 다 같이 모여 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기 위한 조회시간. 이 시간에는 종열, 횡렬로 줄을 맞춰 서야 했기에 일렬로 서서 앞의 앞사람 뒤통수는 보이지 않게 '앞사람' 뒤통수만이 보여야 했고 양 팔을 벌려 옆, 뒤 간격을 맞췄다. 그렇게 대열이 완성되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한 뒤, '우리와는 다르게' 햇볕을 가릴 수 있는 가림막이 있는 단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든 교장 선생님이 나오셔서 전교생에게 훈화(?) 말씀을 해 주셨다. 봄과 가을 같은 날이 좋은 때는 상관없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과 추위가 시작되는 겨울에는 조회 시간이 고역이었다. 훈화 말씀이 길어질 때는 정수리가 타들어가는 듯했고 말씀이고 뭐고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 백번은 족히 들었을 그 조회 시간의 훈화 말씀이 단 하나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지만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있다. 늘 훈화 말씀 끝에 이어지는 '열심히 공부해서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제 곧 끝나는구나 싶어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지루한 훈화 말씀이 끝나면 다 함께 교과를 제창하고 순서에 맞게 한 학년 씩 줄지어 교실로 올라갔다. 어떤 애들을 빨리 가라고 뒤에서 밀고, 또 앞에 있는 애들은 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월요일부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했던 조회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던 그때, 운동장에 울려 퍼졌던 바로 그 곡이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를 돌아보면 매주 월요일 수백 번의 아침을 보냈던 그 시간이 누구를 위한 시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학교의 가장 큰 어른인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시간이라는 취지는 좋았을지 몰라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시간들이 그리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 등굣길에 위풍당당 행진곡을 다시 만나 듣게 된 순간, 내 안에서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그 장면은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교실로 올라가는 갓 10대가 된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이 곡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나라에 필요한 일꾼이 되어야지.'라고 말이다. 그 어린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이전에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대목에서 괜스레 30여 년 전의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엘가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검색해 보았다. 영국의 시민들이 클래식 음악 축제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국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도 같이 흥겨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곡 후반부에 다 같이 합창하듯 부르는 후렴구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Land of Hope and Glory, Mother of the Free (자유인들의 어머니이신 희망과 영광의 땅)

How shall we extol thee, who are born of thee?

(당신에게서 태어난 우리,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찬양하리오)

Wider still and wider shall thy bounds be set

(더 넓고 더 드넓게 당신의 영역 세워지니)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신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신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내가 30년 전 아침 조회 때 '열심히 공부해서 이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며 들었던 이 곡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하고 장엄한 존재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이 사회와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그 어린 학생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존재인지 그 수 백번 조회시간 훈화 말씀 중 단 한 번이라도 언급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분명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귀하게 여기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함인가 아니면 성숙한 인간을 만들기 위함인가. 내가 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시기였지만, 반대로 국제 구제금융이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고, 국내 대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기도 했던 때였다. 그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가장 많이 듣었던 말은 '한 사람의 인재가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학생인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백만을 먹여 살리는 인재가 되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띄고 있었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다양하고도 많은 스펙을 쌓아야 했다. 학교 성적은 기본이고 토익이나 토플 점수에 각 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을 학창 시절을 바쳤고, 취업이 된 이후에도 인사고과에 도움이 되기 위해 대학원을 진학하여 공부를 하기도 하는 등 더 나은 인재가 되기 위한 경쟁은 끝이 없었다. 과연 교육의 목적은 기업과 나라에 도움이 되기 위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일까.


중앙대학교 교수이자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김누리 교수는 지난 100년간 대한민국의 교육이 '反교육'이자 '교육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일제에 지배를 받은 30년 동안 교육의 목표는 '황국 신민'을 길러내기 위함이었고, 군사 독재 정권에서는 '반공 전사, 산업 역군'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으며 이후 들어선 민주정부에서는 '인적 자원'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간, 단 한 번도 교육의 목표가 '성숙한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함'이나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등의 고차원적인 목표로 세워진 적이 없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였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대로 '인적 자원'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때라 심지어 2001년~2008년까지는 교육부의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뀌기도 했다. 교육을 받는 것이 나라에 필요한 자원을 양성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스펙(spec)이라는 단어는 본래 기계나 무기의 사양을 뜻하는 용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하여 이르는 말'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인간을 자원 취급하면서 무기나 기계의 사양을 살펴보는 척도로 쓰는 단어를 인간에게도 적용하여 쓰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고 그것의 출발이 교육이라는 점에서 한숨이 나온다.


 나 역시도 학창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대학생 때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회사에 취직한 이후에는 승진을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의 연장 선장 속에서 살아왔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학벌과 직업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얻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행복과 비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기쁘고 인정받았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꼈지만 내면 한 구석에는 늘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 공허함과 불안의 실체가 뭔지 몰랐지만 그때를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던, '열심히 공부해서 어딘가에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나의 내면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이 사회에,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텐데 나만 뒤쳐지면 어쩌지, 나만 낙오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말이다. 그러한 두려움은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늘 높은 목표와 이상을 세워놓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부족하게 느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퇴사 이후에도 대학원에 입학해 나의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가려 했던 것도 어찌 보면 나 스스로 나라는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더 좋은 상품으로 포장하려 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사회와 기업에 도움이 되기 위한 인재가 되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021년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의 아들은 더 이상 매주 월요일에 운동장에 모여 아침 조회를 하지 않는다. 코로나 19로 인해 입학식도 못하고 거리두기 하며 칸막이 치고 생활하는 마당에 아침 조회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침 조회가 없어진 건,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변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매주 월요일 운동장 조회가 아예 없어졌을 뿐 아니라 등교한 이후에는 수업 시간 전까지 아이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한 세대만 거슬로 올라가도 매주 월요일 국민의례를 하며 뙤약볕에 서서 교장선생님 훈화를 듣던 모습이 이제는 '라테는 말이야~'라고 얘기해야 하는, 부모들의 산 역사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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