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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심소현 Oct 16. 2021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예민해도 괜찮아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때는 ‘내 아이가 나의 가장 연약한 점을 비추어 줄 때’ 일 것이다. 본인이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이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때 속상하고, 소극적인 부모라면 자녀가 공동체 생활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 마음이 힘들다. 내가 가진 ‘어떤 측면’을 나 자신이 싫어한다면 내 아이만큼은 그 모습을 닮지 않고 힘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살기를 바란다. 이 땅의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예민한 기질의 소유자다. 감각이 매우 발달해서 후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게 느낀다. 매우 작은 소리를 잘 듣고 멀리서 풍기는 냄새도 잘 맡는다. 피부에 닿는 옷의 재질에도 매우 민감해 까끌까끌한 재질은 잘 못 입는다. 신발도 아무거나 못 신는다. 그래서 편한 신발을 발견하면 그것만 신는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잘하고 작은 변화도 잘 알아차린다.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위에 열거한 예민한 특성 자체만 놓고 보면 ‘좋고 나쁨’이 없다. 그저 수많은 기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좋고 나쁨으로 분별하고 구분하기 시작한다면? 여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나는 나의 예민한 기질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던 것 같다. 예민함이 사는 데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무던하고 덤덤한 기질, 얼마나 좋은가. 나도 무던하고 싶었다. 사회에서도 예민한 기질이라고 하면 좋게 말해 ‘예술가적 기질’이라고 표현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다소 ‘까칠하다’고 묘사된다. 나의 예민한 기질이 싫었던 나, 점점 ‘아닌 척’으로 나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불편해도 아닌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의 연기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성격’로 비추어졌지만,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점점 더 어두운 구석으로 미뤄 넣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나의 가면은 점점 더 두껍고 정교해서 ‘그 가면의 모습이 진짜 나인가?’ 나조차 착각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가면 쓴 모습을 ‘진짜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회사에서, 동료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면을 벗은 나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가면으로 숨기고 있던 진짜 나의 모습 말이다. 날개가 물에 흠뻑 젖어 날지 못하는 한 마리 나비처럼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나 아닌 모습으로 연기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은 날이면 더욱 지치고 공허했다. 그러한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에는 TV 프로그램을 계속 돌리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친한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persona)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 고 했다. 여기서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사용되는 탈’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분석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보이는 외부 성격, 사회생활을 할 때 걸치는 얼굴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즉,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요구되는 역할이나 규범 등이 있으면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는 것이다. 누구나 집 안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은 다르다. 또한 학교에서, 회사에서의 모습과 나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가면은 내가 그 사회에 적응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이나 나만의 가치관이 내면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칼 융이 말한 ‘천 개의 페르소나’ 중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나 초자 모를 수 있게 된다. 그저 남들이 원하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나를 맞춘 ‘가면 쓴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내가 가면을 쓴지도 모른 채 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마인 나의 예민한 기질을 거울처럼 비추어 주면서 가면을 벗은 진짜 나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첫째는 나의 예민함을 많이 닮은 아이다. 청각이 발달해 어려서부터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깼고 후각이 발달해 냄새를 기똥차게 잘 맡았으며 미각은 또 어찌나 발달했는지 조금이라도 매우면 못 먹었다. 촉각은 말할 것도 없어서 3~4세쯤에는 옷 안에 달린 상표 라벨이며 세탁 시 의사항 등을 표시한 종이들을 모두 가위로 잘라달라는 주문(?)을 했다. 정말 피곤했다. 기본적으로 애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요구사항이 너무 많았다. 누우면 자고 냄새에는 무던하며 음식도 주는 대로 아무거나 잘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건 나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첫째와는 다르게 누우면 바로 잠이 들었다. 심지어 오빠가 옆에서 소리 지르고 노는데도 깨지 않았다. ‘오예, 다행히 한 명은 순둥이로구나..’ 너무 좋았다. 그러나 좋았던 것도 잠시, 클수록 아이의 본성이 드러났다. 잠만 잘 자는 거였지 예민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한 술 더 떴다. 여자애라 아침에 머리를 빗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엉겨 비질이 잘 안되면 냅다 소리를 질러대며 울었다. 머리만 빗겼을 뿐인데 아침마다 ‘엄마 나빠’를 외치며 울음바다가 됐다. 저녁에 목욕시킬 때 머리를 감기면 아프다며 또 소리를 질렀다. 목청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서 목욕탕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살살 해도 ‘아프다’ 엉기면 ‘더 아프다’ 꽥꽥 소리를 질렀다. 정말 힘들었다.


내 컨디션이 좋은 날은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서 “그래,, 아프구나. 살살해줄게.”라고 대응해 주다가도 내 몸이 피곤하고 지친 날이면 “아 이제 제발 그만 좀 해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에게 화가 나서 토라지면 처음엔 사과를 하며 풀어주려고 하다가도 쉽게 기분이 안 풀어질 때는 너무 지치고 나조차 화가 났다. 아이가 속상해서 울 땐 그 울음소리가 너무 듣기 싫을 때가 있어서 “그만 울어! 어서 뚝 그쳐!” 라며 나도 모르게 우는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예민한 나의 모습. 나 조차도 끔찍이 싫어 숨기고 부정하려 애썼던 그 모습을 아이들은 그대로 보여주었다. ‘~인 척’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말이다. 지금까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며 30년 넘게 예민하지 않은 척, 쿨한 척, 명 연기로 잘 살아왔는데 한 명도 아닌, 두 아이 모두 다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다. 나의 아이들만큼은 나처럼 예민하지 않고 무던한 기질로 태어나 ‘둥글둥글 성격 좋다’는 소리 들으며 편안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나의 두 아이들은 온갖 예민한 모습은 다 보여주며 내 그림자를 건드렸다.




성장한다는 말은 집단 문화가 수용하는 것과 수용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어 전자를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하는 것은 자아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그림자가 되는데 성장은 그림자 형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림자란 한마디로 심리의 어두운 측면이다. 그것은 자아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내면의 유쾌하지 않고,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다.


가끔씩, 사라지지 않고 한편에 쌓여가던 그림자가 표출된다. 물론 이때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내 안에 이런 면이 있다니!’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흔히 술에 취하거나, 실연을 당했거나, 콤플렉스에 강하게 지배받을 때 그림자가 행동으로 옮겨진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중에서-



아이가 울 때 화가 났던 건 무의식으로 밀어 넣어 두었던 나의 그림자가 함께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사회가 원하지 않기에 나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그림자로 살게 했던 나의 본성이 자신의 존재를 온 힘 다해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는 제발 알아봐 달라고, 모른 척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내 아이의 예민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 위해서는 내 안의 그림자와 먼저 대면해야 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싫어해서 내 안에 어두운 구석으로 밀어 넣었던 그림자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 아이들의 예민한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예민함을 억누르며 ‘나 아닌 나’로 살아왔듯이, 내 아이들도 거짓 자아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것도 보였다. 내가 변해야 했다. 변하지 않으면 내 아이들에게 나의 상처를 대물림 하게 될 것이라는 걸 자각한 순간, 나는 선택하고 다짐했다. 내 아이들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주고 싶다고. 


힘들면 쉬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속상하면 마음껏 우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솔직한 아이들로 크게 하고 싶었다. 힘든데도 인정받기 위해 쉬지 못하고, 아파도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울지 못하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들의 예민함이 숨겨야 할 그 어떤 것이 아니 어쩌면 신이 주신 하나의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자유롭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남들은 까칠하다고 말할지언정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기의 직감을 믿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놀랍게도 엄마인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온전히 바라볼 때, 내 아이의 온전함도 발견할 수 있었다. 치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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