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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띠선비 Jun 29. 2019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2월에 다녀온 군산 여행에서 캘리그래피 작가님으로부터 우연히 선물 받은 엽서)

이번 글에서는 내가 2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살던 문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2년 전 나는 대학교 입시 이후로 다시 한번 삶의 궤적을 바꿀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취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저성장, 청년실업의 무게가 내 피부로 느껴졌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과연 나는 어느 회사에 지원해야 할까?', '과연 나는 취업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옳은 선택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와 같은 수많은 걱정이 생겨났다. 당장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아도, 학생과 사회인이라는 신분에 걸쳐진 취업준비생이 느끼는 걱정의 양은 상당했다.


당시 우연히 모 기업을 조사하다가, 기업의 CEO가 자신의 삶의 신조로 '수처작주'라는 문구를 소개했다. 나는 그 뜻이 공감이 되어, 당장 인터넷으로 그 문구를 찾아보았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 전체 문구였고, 당나라 임제 선사가 남긴 화두였다. 그 말은 수많은 걱정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고, 정신적 고통 속에서 지내던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취업이라는 난관을 통과할 때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마음속에 아로새겼고, 그 힘으로 결국 취업이라는 터널의 끝에 다다랐다.


수없이 그 뜻을 되뇌고 한자로 적으며,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해 준 문구인 '수처작주 입처개진'에 대해서 나만의 풀이를 해보고 그 뜻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수처(隨處): 다다른 곳에

직역하면 '어떤 곳에 다다르다'이며, 이를 의역하여 '다다른 곳에'라고 하자. 이때 왜 자신이 간 곳, 선택한 곳도 아닌 다다른 곳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의문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린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상당 부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다양한 외부 변수가 작용해서 삶이 채워진다. 인간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은 단순히 자신이 선택한 대로,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의 상호작용이 만든 것이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다다른 곳이 된다.


2 작주(作主): 주인이 되어라

이 부분 해석의 이론(異論)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적으로 그 의미를 풀이하면, 주인이 되는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의 완벽한 통제권을 쥔 상태라기보다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 마음의 통제권 즉 내 마음을 다스리고 평온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의 내외부적으로 완벽한 통제권을 갖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그것이 슬픈 상황이든, 기쁜 상황이든 받아들여 내 마음을 다스리고 평온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우리가 다다른 곳에 주인이 되는 방법이며, 어느 순간이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3 입처(立處): 서있는 곳

이 부분은 앞의 말이 실현되었을 때의 상태다. 다다른 곳에 주인이 되면 우리는 그 상황에, 그 순간에 서있을 수 있다. 마음의 혼란을 잠재우고, 그 상황이 무엇이든 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것을 '서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숨지도, 도망치지도, 두려움에 머리를 숙이지도 않은 상태. 그것이 바로 서있는 상태이다.


4 개진(皆眞): 모두 참되다

다다른 곳에 주인이 되어서 우리가 그 상황에 바로 서있으면, 우리에게 다가온 모든 순간은 참되다. '참되다'라는 말은 그 뜻을 함부로 풀이하기 어렵지만, 아마 '옳다', '맞다'라는 의미보다는 우리 삶을 진정 살아내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슬픈 순간이든, 기쁜 순간이든 우리가 마음을 다잡으면 우리의 모든 순간이 참되고, 우리는 그 모든 순간을 오롯이 진심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진심으로, 진정으로 살아내는 것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가장 참되게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참되다'를 '진정으로 살아낸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2년 전부터 알게 되어 걱정과 불안이 찾아올 때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되뇐 문구 '수처작주 입처개진'. 일을 시작한 이후로 당장 닥친 것에 급급하여 이 문구를 잊어버린 적도 많았다. 이 글을 쓴 계기로 다시 한번 이 문구를 마음속에 아로새겨야겠다. '불교'라는 종교를 떠나서,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삶을 살아내는 데 이 문구가 의미가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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