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남미여행을 시작했던 멕시코부터 느꼈지만 마트에서 사람이 아무리 많이 줄을 서고 있어도 누구 하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마트에 직원이 3명이 있다. 한 명은 카운터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계산하고, 나머지 두 명은 묵묵히 마트 진열대를 정리하는 등의 본인들의 일을 먼저 한다.
갑자기 손님이 많이 몰릴 때는 카운터가 한 개가 아니라면, 급한 일부터 처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걸 여행하며 본 적이 없다. 다들 각자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느긋함
대기하는 줄이 길어도 직원들은 느긋하다. 사람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일 처리 속도는 변함이 없다. 자주 반복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문득 '이 공간에서 나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에서의 시간은 굉장히 느슨하다. 친구들끼리의 저녁 약속을 잡으면 1~2시간 늦는 것은 당연하고, 대중교통도 정시 출발이라는 것은 거의 없시피 하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직원이 한 명 일하든, 두 명 일하든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해 굉장히 여유롭다는 것은 한국인 입장에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나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껴지니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대형 마트와 헬스장
처음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헬스장에 갔는데, 조금 운동하고 나니 안내 방송으로 무언가를 공지했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제대로 듣지는 못했는데 서서히 전등이 꺼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헬스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곧 닫는다고 했다. 주말은 더 늦게까지 하는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주말 늦은 오후에 운동하러 올 수도, 장을 보러 갈 수도 있는데 이러면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 불만은 모두 나에게만 있었나 보다. 이런 이야기를 현지인 친구들에게 해보았지만 '그게 왜? 원래부터 그렇게 했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저녁이 있는 삶
일찍 마감을 하면 일하는 직원들 모두 일요일 저녁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사회적으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그동안 한국에서 내가 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감춰진 노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 주문한 상품이 내일 아침에 도착하기 위해서 거치는 수많은 노동은 그저 편리함에 익숙해 모르고 있었다. 24시간 편의점, 식당, 헬스장 등은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놓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아무 때나 편하게 방문해도 되었다.
그렇게 보니, 다들 여유로운 것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일보다 가족이 먼저인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들의 시각으로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일하는지, 가족보다 일이 우선인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