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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도

by 박은영


이게 마지막이야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고 꿈꾸는 모든 것의


남은 건 네 푸른 눈에 담아


알지 우린 곧 떨어질 거야

남겨온 것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사랑한다고 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을

더 사랑하기 전에


가만가만 들리는 소리 그게 신경 쓰여

잠을 설치는 날이 계속되면


고요한 심장 소리

아직 숨 쉬고 있다는 느낌

그게 신경 쓰여 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게

꿈을 꾼다는 게


같은 곳으로 가면 안 되는데 거긴 절벽이야 세계는 여전한데 여기는 너무나 위태롭고


눈을 떠보면 또 어제다


떨어지는 게 꿈이라면

우리는 또 바닥을 사랑하고


끝을 바라도 누군가는 이곳이 시작이라서


어제를 살아도 발끝이 시리고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리지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인데


푸른 밤과 푸른 꿈

그중에

절벽을 고르자면


네 눈에 투명한 빛이 맺히면

모두 잃어도 깨어날 수도 있구나


기적을 잃어서

버리고 또 버려도


사랑이 남아서


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만큼 내가 너를 사랑할게

너도 그래주겠니


우리는 아직 비스듬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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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장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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