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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타율주행他律走行

by 박은영


와이퍼는 없나 봐요

앞이 흐릿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시야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되어 있거든요


황사에 뒤덮이더라도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돼요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요


그러면 먼지를 쓴 게 제 차인가요 저인가요 아니면 당신인가요?


얽히고설킨 우린 모두 부옇기만 한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면


희부윰한 빛을 덮어쓰고

희미하니까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뿌연 형상만 보이는데


표정에는 잿빛 미래가 흐르고


모래 먼지를 뒤덮고 다녀도 좋아요

우리 모두 그러니까 이건 큰 시대의 흐름이니까


흘러가지 못하면 도태되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가야 해요 앞이 보이지 않아도요


먼지에 먼지를 던지면

더 빠르게 먼지가 될 수 있어요


우린 점점 가벼워지겠죠


저기 나와 똑같은 먼지 뭉치가 있어요

이제 차선도 변경할 수 있고요


근데 그거 아세요?


운전대를 놓지 않는 세계에서는

황사비가 내리지 않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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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장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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