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별일 없음은 36,100원입니다

by 박은영


너는 33,200원에 별일 아니라는 늙은 의사의 말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산부인과는 왜 이렇게 비싸


2,900원짜리 5일분 호르몬 약을 먹으면서


삼만 원이 넘는 진단과

삼천 원이 안 되는 약 중에

너를 살리는 건 뭘까 고민하다가


문득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와서

안심했던 너


난 좀 맑게 개기 전이 좋더라

광명은 좀 거짓 같잖아

적당히 흐려야 구름도 있고 노을도 예쁘지


너는 중얼거린다


아직도 하늘을 사랑해

구름에 번져 섞인 흐린 붉은빛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 그러면 적당한 계절들을 또 적당히 견뎌야만 한다고


차가운 초음파 젤을 덧바른 듯

살짝 서늘해진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너는 시인한다


늙은 의사의 진단이 맞았다는 걸



keyword
박은영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장인 프로필
구독자 613
매거진의 이전글타율주행他律走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