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소연, 『사랑과 결함』 |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저번 주에 읽은 소설집 두 편. 『사랑과 결함』, 『안녕이라 그랬어』 예전에는 장편 소설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일상 중에 틈틈이 읽어야 해서 그런지 소설집을 많이 읽게 된다. 근래 소설집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고. 사실 김애란 작가님의 신간은 전작『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그저 그렇게 읽어서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었으나, 서국제에서 초판을 발견한 순간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결과적으로는 좋았지만! 어쨌든 선연한 감정이 남아 있을 때 남겨보는 독서 기록 -
─ 예소연, 문학동네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 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p. 25)
나는 그런 윤다혜를 보자 더욱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버렸고, 다시 한번 이 세상에는 아주 견고한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p.106)
『사랑과 결함』은 예소연 작가의 소설집으로 말 그대로 사랑과 결함으로 점철된 10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사랑은 그 사람의 결함까지도 끌어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순하고 예쁜 부분은 사랑하기 쉽다. 하지만 심연의 못난 부분은 어떨까. 누군가는 섣불리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자신의 결함을 먼저 내보이기도 한다. '이래도,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어?'하면서. 여기서도 관계에 서툰 사람들이 서로를 할퀴고, 미워하고, 찌르다가도 종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최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 자주 보이는데, '불가해'의 영역을 품는 것이 이 사회의 과제이자 아픔이라 그런 듯하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예쁘지는 않다. 자주 모나고, 자주 아프며, 서로를 슬프게 한다. <우리 철봉 하자>의'석주'와 '맹지', 연작 소설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의 '희조'와 '미정', 표제작 <사랑과 결함>의 '나(성혜)'와 '고모(순정)', <내가 머물던 자리>의 '시연'과 '정선', 이들은 지독하게 가까우면서도 시린 현실 속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상처 준다. 한껏 예민해져 무른 마음을 찌르면서도 "견딜 수 없는 마음"(25면)으로 "아주 견고한 결함"(106면)을 형성하는 관계. 이 소설은 세대와 또래를 넘나들면서 말한다. 결함과 사랑은 분리할 수 없으며, 그 미비한 사랑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며 나누는 건 어떤 형태든 사랑일 것이라고.
덕분에 우리 가족의 관계는 좋아졌지만, 그 속에 무엇이 여전히 비어 있는지는 서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서로에게 사랑을 다짐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 그것이 종국에는 사랑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p.72)
크게 와닿는 작품은 없었으나, <그 개와 혁명>은 꽤나 기억에 남는다. 이는 민주화 운동권 세대였던 '아버지(태수)'와 신자유주의 시대 프레카리아트이자 페미니스트인 '나(수민)'의 이야기이다. '나'가 암 투병 중인 '태수 씨'를 살리고, 또 보내는 얘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제도에 저항했고, 여전히 저항하고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대적 배경과 이념으로 지독하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만큼 닮아있었다. 태수 씨와 '나'는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138면)이었으니까. 여성은 상주가 될 수 없다는 관습에 맞서는 수민. 그들은 관습과 제도로 물들여진 장례식에 아버지가 아꼈던 진돗개(유자)를 풀어놓는다. 이는 그들의 혁명이자 사랑의 형태였다.
여기는 "우리의 적은 제도"(248면)라는 사실을 잊고서 서로만을 끔찍이 미워하고 헤치는 곳이다. 하지만 미움과 증오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며, 남의 불행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내가 머물던 자리>에서 불행 포르노를 즐겨 보았던 '나(시연)'가 "남의 불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331면)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처럼. 지나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방어 기제이지 자신의 온전한 기쁨이 아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사랑할 방법은 그저 결함으로 가득한 지지리도 못난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혁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사랑을 증명할 길은 달리 없었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 사랑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데. (p. 235)
여담이지만, <사랑과 결함>에는 포켓몬 게임에서 '단데기'가 너무 많이 나와 실망하는 '수'에게 성혜가 "단데기도 단단해지느라 바빠"(165면)라는 실없는 소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포켓몬을 잘 몰라 찾아보니 단데기는 자력으로 습득하는 기술이 '단단해지기'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공격도 못하고. 한참을 때려서야 겨우 잡게 되는 존재. 게임 유저들에게는 꽤나 짜증 나는 존재일 수 있겠으나 매력적인 속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단데기가 진화한 버터풀의 기술은 '벌레 먹기'라는데 누군가 '쓰레기 기술'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공격력이나 전투 능력은 없지만, 잘 버티는 존재. 잘 단단해지면, '버터풀'로 성장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단데기처럼 결함을 끌어안고서 단단해지자. 나로서 온전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 김애란, 문학동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p.142)
화제의 신작,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이웃'과 '돈'을 주제로 한 7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타인과 자신의 공간, 그 사이를 넘나들면서 미세하게 또는 자명하게 드러나는 계급 차나 돈이나 이익으로 치환되는 계산적인 마음들을 예리하게 그려냈다. 경제적, 사회적 배경의 차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에서 선히 드러난다. 그러니 <홈 파티>의 '오 대표'와 '나(이연)', <숲속 작은 집>의 '지호'와 '나(은주)' 사이에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큰 차이"(58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24면)인지에 관해.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임원 연기를 위해 '최대한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 사람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자' 다짐했는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어서*였다. (p.40)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p. 141)
개인주의와 사회의 불안감이 만연한 이곳에서 '이웃'이라는 말은 이미 퇴색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좋은 이웃'은 이질적인 결합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에서 이웃이 꼭 '옆집'이나 '앞집'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닐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비교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서로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니까. 표제작인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옛 연인과의 결별과 모친상까지 겪은 은미를 위로로 이끈 것은 화상 영어 강사 '로버트'와의 수업이었다. 서로의 상실에 천천히 다가가고, 타인의 "안녕"(255면)을 비는 헤어짐의 과정에서 은미는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그러니 이웃의 역할은 그저 "안녕"을 비는 것으로 충분하다. <빗방울처럼>에서 모든 것을 잃고 남편을 따라가려고 했던 '지수'에게 도배사가 건넸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293면)와 같은 일상적인 말이나, 401호 아주머니가 "지수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283면)었던 사소한 행위. 그런 것이 한 사람을 살게 한다고.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 다른 의미가 있어.
어떤?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 (p. 254)
현대의 가깝고도 먼 이웃 관계는 상당히 위험한 요소이기도 하다. "마치 누군가 꾼 가장 좋은 꿈을 한데 모아둔"(148면) 것 같은 SNS는 하지 않으면 도태된 것 같고, 하기 시작하면 끊임없는 비교의 수렁에 빠지게 되니까. 어느 날은 <이물감>의 '기태'처럼 폭주하며 스크롤 하는 손가락을 멈출 수도 없다. 다들 아름답고 예쁜 꿈만 꾸는 것처럼 보이면 내 삶은, 내 일상은 그토록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레몬케이크>에서 '기진'이 느꼈던 것처럼 이 모든 일은 나만 겪는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214면) 있다는 사실. 그것도 "맨정신에, 취기 없이."(214면)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비겁하지만 위로가 되고, 우리의 더 없는 "안녕"(254면)을 빌게 된다.
오늘도 부디 안녕. 끝끝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애쓰는 당신의 그 모든 결함과 노력을 응원하면서, 당신의 이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