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읽기 좋은 에세이
내년 겨울에 꼭 다시 읽어야지
실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12월에게서 배운 가능성이다.
내 사랑이 인공위성처럼 느려요
얘들아, 내가 너무 느려도 이해해 줄 수 있겠니?
나를 좀 사랑해달라고
큰 불행이 닥쳐오면 괜한 안도감이 들고,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겁부터 난다.
오히려 끝나버리면,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으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이게 내 사랑 방식인데
끝났다는 건 다음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바보야*
다 소진한 것처럼 보여도 이렇게 또 남아있어.
여전히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에 읽고 또 읽는 시집
읽을 때마다 울게 되는 아름다운 겨울의 문장들
네게 갈 때마다 잠옷 차림인 걸 용서해
이런 어른스러운 말투를 배우게 됐어
살이 트고 있거든
더 차가운 사람이 될 거야
눈이나 서리가 된다면 더 좋을 거야
네게 업힐 수 있겠지
업히고도 무겁지 않을 만큼만 자랄 수 있겠지
예쁘게도 얼었다
내 발은 닿자마자 얼음 위에 붙어버려
얼음 밑에 사랑하는 소년이 살아서 그런 거지
조심해.
울다가 웃으면 어른이 된다.
늘 투명 인간이 되고 싶었어.
사탕도 마음껏 먹고, 나쁜 어른들 골탕도 먹이고,
신나잖아.
투명한 미래라고 하자.
네가 나를 지나칠 수도 있고, 내가 너를 통과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없는 건 아냐.
투명한 미래에서 우리를 찾는 일
이 궤도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그곳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서로를 해치면서까지 행하는 모든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부족도 전쟁도 부패도, 뭔가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자연이 빚은 나무와 예술가가 빚은 나무의 차이.
그 차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심원하다.
그래, 우린 혼자야, 그러라고 해.
어쩌면 모든 존재의 본질이란 위태로이 핀 끝에서 동요하는 것,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 아닐까.
그래, 중요한 건 지금이고
모든 것을 지나온 나는 여기에 있다.
울지 않을 것, 후회할 말을 하지 말 것, 이런 건 다 소용없이
우리는 오래 살아서 더러워질 것이다 스스로를 무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피를 흘리고 피를 마셨다
이렇게 살았고
숨소리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
잘, 살자. 우리 한 해 또 잘 살아보자
사는 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태연하게 하는 일
나는 천천히 부식되어 간다.
거꾸로 자라도 잘 살아
반대로 걸어도 어디든 누비듯이
아직도 비가 오고
나는 젖은 신발을 신고 간다
미처 떠나지 못한 몇몇만이 손을 붙잡고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나갈 때가 되었잖아
실낱같은 손끝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잘 자, 영원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래 악몽도 다 꿈이니까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기로 다짐해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우리 오래 살자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일
지옥이 되어버린 천국에서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살의가 필요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너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슬퍼질수록 더 기뻐지는 사람이 있는 것만 같아
아름다운 꿈은 깨지 않아서 완벽하다.
살아있다는 이유로 나는 언제나 그럴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하곤 했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신에게 사과받지 않을 것이다
헤어지기 위해 하는 인사는 이제 관두고 싶다
모두가 영원히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그런 안녕은 잠시 멈췄으면 하고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초봄에 내리는 눈은 지난해 흘린 눈물의 양과 닮았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꾸준히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거의 유일한 정언명제다.
어느 순간부터 새해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게 되었다.
평안하고 무탈하기. 그 외의 다짐 같은 건 이제 없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알아. 그럼에도, 꾸준히 나아가는 것.
지나간 일에 매몰되지 말기. 조금 더 어른스러운 태도로.
고선경, 『29.9세』
한정원,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
서맨사 하비, 『궤도』
오산하, 『첨벙 다음은 파도』
권누리,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