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한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이 되지만, 한국에서 이민 온 1세들은 누구나 해결해야 하는 것이 신분 문제이다. 유학비자를 받아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영주권 스폰서를 해줄수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영주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고, 투자이민이라는 방법을 통해 영주권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미국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영주권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몇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어쨌건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신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고, 그 중에는 불법체류자로 미국에 거주하는 것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260만이라고 하는데 그 중 약 12%가 불법체류자라고 한다. 3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불법체류자라는 뜻이다.
나는 회계학(+ 일본어)을 공부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잡은 첫 직장이 이민법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약 6년간 이민법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이민법에 대해 어느정도 전문가가 되어버린 동시에 이민사회의 고충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내 자신의 신분문제 때문에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미국 이민을 올 때는 아버지가 주재원으로 온 것이었고 나는 "주재원 자녀" 신분이었는데 와서 얼마후에 아버지가 그 회사를 퇴사하고 개인 비즈니스를 하면서 어떤 종류였는지는 모르지만 영주권을 신청했는데 결국엔 거절당했다. 어떻게 보면 그때 한국에 돌아갔어야 하는 걸수도 있고, 적어도 누나와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의 의견을 물어봤어야 하는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둘다 고등학생이었고,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엄마는 혼자 한국에 살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어카운팅을 공부하면 졸업하기 전에 보통 인턴쉽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졸업하기 전 한 두 학기는 직장을 찾는 것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나는 그래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학교, 좋은 성적에 연연하는 한국사회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래도 완전 막바지에는 어카운팅 회사들이 캠퍼스에서 리크루팅하는 이벤트에 참석하기도 하고 큰 회사들 몇군데에 입사 지원을 해서 두 번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근데 그때는 내가 합법적으로 일 할수 있는 신분이 안되서 오퍼를 받아도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상태를 파악하고 나니 내가 일 할 수 있는 곳은 나의 불법체류 신분에 눈감아 줄 수 있는 작은 한국회사들 뿐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인 CPA 사무실 (회계사 사무실)을 이곳 저곳 알아봤다. 여기서 또 중요한 사실은 accounting 전공으로 졸업해서 CPA 자격증을 따는 두가지의 관문은 CPA 시험을 패스하는 것과 CPA 아래에서 2년간 근무 (그 때 당시 캘리포니아 기준)하는 것이었다. Accounting 은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전공 중 하나이고 (영어가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가 부족하지만 CPA 가 목표인 사람들에게는 한인 CPA 사무실이 거의 유일한 첫 스텝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 CPA 사무실은 다른 종류의 회사들보다도 적은 임금으로 사람을 찾는게 쉽다. 그 때 당시 미국 주류사회 CPA 회사들의 초봉은 $50,000 이상이었는데 내가 인터뷰 했던 한인 CPA 사무실들은 $24,000 을 얘기했다. 2006년의 이야기라 지금보다는 물가가 낮긴 했지만 그래도 한달에 $2,000 은 대학 졸업생들에게는 어디에 가서도 볼 수 없는 최하의 연봉이었음이 확실하다. (적어도 내가 사는 Southern California 에서는)
2006년 후반기. 이 당시 내가 했던 선택은 어떻게 보면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 중 하나였고, 내가 다음에 따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내가 student loan (학자금 대출)을 강력하게 반박하는 바탕이 된다. 나는 student loan 이 있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학비와 생활비가 크레딧 카드에 쌓이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때문에 $2,000 의 월급은 부족했던 것이다. 몇 달 동안을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되니까 마음이 급해졌고, 서서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회사인지 막론하고 불법체류자를 고용해 줄 만한 회사는 모두 타겟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찾게 된 것이 이민법 변호사 사무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곳의 월급이 CPA 사무실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것도 아니다. 그 때 나의 첫 연봉은 $30,000 이었다. (월 $2,500)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고, 6개월 후에 약간 더 큰 사무실로 이직하면서 연봉이 $36,000 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어카운팅 관련 일을 찾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일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한 것을 10년이 넘게 몸소 실감했다. 첫 직장에서 6개월정도 일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당시에 썼던 일기가 있다.
"이제 *****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12번 남았다. 처음 시작할 때 계획은 2년 정도 일하는 거였다가 일 시작하고 나선 1년만 일해야지라고 바뀌었다가 결국엔 6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니까 굳이 오래 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페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CPA 사무실을 알아볼 수도 있었는데 어쩌다가 또 변호사 사무실로 옮기게 되었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처음에 여기에서 시작할 때만큼 긴장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긴장이 되긴 한다. 나의 미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대학원을 가게 될 것인가. 얼마나 일을 해야 넉넉하게 벌어서 살 수 있을까... (생략) 돈이 좀 넉넉히 있으면 일을 쉬고 CPA 공부라도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우선 3년 열심히 일한 다음에 그때 MBA를 생각하던지 그래 보자. 돈 조금씩 조금씩 아끼면서 열심히 3년을 지내보자." (2007년 4월)
1화에서 언급했듯이 난 크레딧카드가 10개에 엄청난 빚이 쌓여있었다. 졸업할 때에는 아마도 3-4만불 정도였을텐데, 그 후로 아버지의 재정상황이 무너지면서 2-3년 동안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아버지한테 돈을 빌려주다 보니 (그 상황에는 빌려준 것이었지만 결국은 돌려받지 못할 돈이었다) 8만불 이상이 된 것이었다. 졸업후 싱글이었을 때 매형/누나 집에 렌트도 안내고 얹혀살면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8만불의 빚에 대한 minimum payment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같이 더 늦기 전에 회계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옮길 곳을 먼저 찾은 후 사표를 냈어야 하지만, 회사 내에서 사무장과의 트러블이 충동적인 사표의 발판이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한 것이 2009년 5월. 내가 바랬던 대로 앞으로 쭈욱 하고 싶을만한 필드에서 직장을 구할수 있을줄 알았는데 체류신분이 없는 소위 “불법체류자”로써 내가 원하는 포지션은 커녕 어떤 직장이라도 구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을 그만둔지 한달이 지나고 조급해졌다. 결국 3년 전 졸업 후의 상황과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할수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은게 또 다른 변호사 사무실. 이민법 변호사 사무실 경력은 2년반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들어갈순 있었지만 문제는 터무니없이 적어진 월급이었다. 월 5-600불정도 내려갔고 크레딧카드의 minimum payment 조차 불가능해진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 하던 중에 "Debt settlement program" 이라는것에 대해 들었고, 그런걸 도와주는 회사에 도움을 청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받은 도움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 계약을 할때는 별거 아닌거처럼 쉽게 해결해줄수 있을것 같이 말하더니 뚜껑 열어보니까 그 회사도 별수 없었다. 내가 혼자서 스스로 research 했으면 개인이 충분히 똑같이 할수 있는 일이었다. 영어가 안되서 크레딧카드 회사와 소통이 안된다면 모를까 그런 경우도 아닌데. 어카운트 10개를 맡겼는데 결국 1개 settle 하는것만 도와주고 계약을 캔슬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혼자서 하나하나씩 해결해나갔다. "Settle" 이라고 하면, 남아있는 총 빚에서 20-50% 정도를 한번에 내고 나머지는 탕감해주는 것인데 모아 놓은 돈이 없었기에 빚 액수가 컸던 카드는 그 20-50% 만큼의 돈이 있을리 없었다. 그렇게 한번에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일정 기간을 정해주고 매달 payment 를 해서 전체액을 갚는 쪽을 택해야 했다. 5개는 settle 이 되었고 5개는 2-3년에 걸쳐 매달 payment 를 하는 것으로 pay off 했다.
$81,455 의 빚이 추가 이자 및 late fee 등이 붙어서 $93,710 이 되었고 settle 한걸 계산했을때 총 갚은 돈은 $74,451 이었는데 이 액수는 내가 갚고 싶다 마음을 먹어서 갚은게 아니고, 그냥 궁지에 몰려서 갚지 않으면 안되어서 갚았던 것이다. 2년 또는 3년으로 나눠내는 건 대부분 한꺼번에 시작되었다. 그것도 딱 결혼하기 바로 직전에. 위에서 말했던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은 1년 2개월 정도 다니다가 결혼을 하기 바로 직전엔 그만두었었고, 결혼을 바로 앞두고 새로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시민권자와 결혼하면서 더 이상 신분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굳이 변호사 사무실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 걸리지 않고 다른 직장을 구했지만 내가 시작했어야 하는 CPA 사무실은 아니었고, 어떤 물류회사에 accounting 부서 직원이었다. 졸업한지 3년이 지나고 accounting 경력이 없는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 accounting 회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혼여행 갔다온 그 다음주부터 첫 출근을 했는데 월급이 $3,000. After-tax 는 대략 $2,400 그리고 내가 내 빚을 갚기 위해 매달 내야 했던 돈은 $2,155. 다시 말해서 아파트 렌트, 차 페이먼트, 와이프가 가지고 있던 소액의 카드빚과 student loan, 생활비 등등을 와이프가 버는 것만으로 해결했어야 했는데 와이프의 월급도 나랑 별 차이 없는 정도였다. 매달 budget을 가지고 살았었는데 계산을 해봤을때 돈이 모자라지 않는 달이 한번도 없었다. 결혼 후 거의 4년동안 쭈욱. 그래서 나의 10개의 카드를 갚는 동안 또 한편에서는 새로운 카드빚이 늘어나고, IRS 에 밀린 세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불법 체류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 정규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세금을 냈어야 하는데 몇년을 계속 못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희망은 가지고 있었다. "2-3년에 나눠내는 카드빚이 다 끝나면 숨 쉴수 있을거야”라고... 2012년 8월에 가장 큰 페이먼트가 2년이 지나고 끝났었다. 그러기 한달 전인 7월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자녀의 보험 추가비용, 많이 드리진 못했지만 애기 봐주시는 양쪽 어머니께 드린 daycare 비용, 6개월때 emergency room 에 데려가고 입원하느라 생긴 1800불가량의 medical bill 등등... 카드 페이먼트가 하나 하나씩 끝나면서 그만큼 페이먼트가 더 생겼다. 그리고 10개의 카드에 대한 모든 payment 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monthly budget은 마이너스였다. 그때 난 심각하게 좌절했었다. 진짜 빠듯하게 사는것에 지쳐있었는데 앞으로도 돈이 모일 길은 보이지 않았으니. 그렇게 힘든 삶에 지쳐있을때 둘째를 갖게 되었다. 좋기도 했지만 솔직히 눈앞이 깜깜했다.
둘째 딸이 태어나기 2주전에 아내가 생일 선물로 사다준 The Total Money Makeover 라는 책을 읽고 “희망”을 발견했다. 그 때의 우리 가족의 상황은 $33,769 의 빚이 있는 상태. 액수로 봤을때는 내가 결혼하기 전의 바닥에 비하면 매우 양호하지만, 실제로는 이때가 가장 어두운 bottom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