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igm Shift
이민자들에게 가장 큰 유익을 꼽으라면 하나의 문화가 아닌 두개 혹은 그 이상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접하는데 있어서 하나와 둘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특히나 그 하나가 한국처럼 비교적 닫혀있는 나라의 문화일 경우는 더 그렇다. (내가 이민을 떠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을 보는건 몇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한 문화에서 태어나 쭉 같은 문화속에서 살아오면 그 문화에 베어있는 사상이나 습관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고 그런 것들이 혹시 잘못되거나 비효율 적인 것은 아닐까, 그보다 더 나은 alternative 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하고 생각해보는 훈련이 잘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를 알다가 두번째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 약간의 충격과 함께 비교해 보게 되고, 둘 중 더 맞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할수 있게 되고, 또 가장 중요한건 "이것을 이렇게도 볼수 있고 저렇게도 볼수 있었단 말야? 그럼 이 둘 말고도 또 다른 방법으로도 볼수 있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도 지역마다 많은 차이가 있는데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같은 경우엔 너무나 많은 문화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더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는 인터넷과 쏘셜미디어를 통해서 위에서 말한 문화 충격은 어느정도 완화되었을 수도 있긴 하다. 빚을 갚고, 돈을 모으고, 부자가 되어 넉넉한 삶을 살게 되는 긴 여정에서 큰 방해거리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문화"이고, 내 머리속에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잡아 온 사상들이다. "이것은 원래 이런거야. 계속 그래왔고, 이렇게 안 하면 이상한거야"식의 생각들이다.
현대사회에서 norm (표준)은 돈이 생겼을 때 쓰는 것이다. 돈을 잘 벌게 되어서 BMW 를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BMW 를 사는 것이 norm이다. 주위에 여럿이 갖고 있는 좋은 걸 발견했을 때 당연히 나도 갖고 싶어지게 되고 혹시라도 모은 돈이 없을 때는 크레딧 카드를 쓰는 것이 norm 이다. 너무나 많은 것이 "소비"에 집중되어있다. 돈을 쓰지 않고는 재미를 찾거나 행복을 누리는 게 힘들어진 사회이다. 소비가 norm 이 되어있는 사회에서는 카드 빚을 지는게 norm 이 된다. 은퇴준비를 하지 못하는 것이, 자녀들의 학자금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norm 이 된다. 깊이 생각 안해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은 너도나도 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이 정말 잘 쓰는 비표준어 표현 중에 하나가 “쪽팔린다”라는 표현일 것이다.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어쩌면 안 쓰는 표현일지 몰라도 같은 개념의 또 다른 표현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람들은 쪽팔린걸 제일 싫어한다. 사실이 어찌되었건 남에게 안좋게 비춰지는걸 견디지를 못한다. “남에게 보이는 나”가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보다 더 중요해진거다. 한국사람들은 차를 살때도 내가 불편한건 참아도 남들한테 쪽팔리는 차는 못 탄다. 대학을 가도 뭔가를 배우기 위한 목적보단 남들에게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 애써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한다. 나도 쪽팔리는거 정말 싫어한다. 이걸 바꾸는거는 쉽지 않다. 남들의 눈을 너무 신경쓰지 않는것, 그것을 위해서는 평생 노력해도 모자랄거같다. 부자가 되고 싶어도 남들의 시선에 의식하는 것 때문에 부자가 되는게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내가 나름 지위가 있는 사람인데 저런 차를 어떻게 타고 다녀", "내가 이런 싸구려 브랜드 제품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보고 비웃을거야"라는 생각들이 어느정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번에 언급한 7 Baby Steps 를 처음 시작하고 빚을 한창 갚아 나가고 있을 당시에 최대한 자주 아내가 점심을 싸줬는데, 아침에 피곤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점심을 못싸줄땐 나가서 사먹었다. 햄버거가 $2-3하는데 소다를 $1.50 정도씩 주고 마시는게 아까워서 집에서 Pepsi 캔을 하나씩 가지고 갔었다. 개인적으로 햄버거나 샌드위치 먹을때 소다가 없으면 진짜 먹기 힘들다. 예전부터 점심은 보통 혼자 먹었고, 근처 햄버거집은 5분정도를 걸어가는 거리였는데, Pepsi 캔을 손에 들고 북적거리는 거리를 걸어가는것이 좀 쪽팔렸었다. 특히 코리아타운 한 복판이어서 한국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근데 Baby Step 을 시작한 후론 까먹지 않는 이상 가지고 갔다. 지금 이 순간을 보는게 아니고, 내 두 딸들(셋째 딸이 태어나기 전 이야기)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니까 Pepsi 캔을 손에 들고 5분 걷는건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Baby step을 하기 전에도 가끔은 소다를 챙겨 다녔는데 보통 주머니에 넣어서 가고, 오더할땐 직원 안보이게 슬쩍 가리기도 하고 그랬었다. 근데 내가 지나치거나 나의 손에 있는 펩시캔을 보는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고, 나는 나의 가족의 미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것이 쪽팔렸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웃기게 되었다. 오히려 그 캔 하나가 뭔가 상징적이 되어서 더 재밌는것 같았다.
사실 소다가 비싸긴 하다고 해도 소다 살 돈 아껴서 부자가 되는건 아니다. 나중에도 얘기하겠지만, 그렇게 $1-2 아낀다고 빚갚는게 몇달씩 빨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근데 중요한것은 mindset 이다. 우리 가족의 미래가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길거리 지나가는 stranger 한테 어떻게 보이는가는 먼지만큼도 안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가족은 14년된 Volkswagen Golf와 13년된 Toyota Sienna 를 타고 다닌다. 누군가는 최신형 고급차를 타면서 나를 보고 우쭐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내가 당신보단 좀 더 능력이 있고, 더 성공한것 같소" 같은 마음말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이 타고 다니기에 충분히 안전하기만 하다면,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는 맨 마지막 priority 라는 것이다. Dave Ramsey 가 자주 하던 말 중 하나가 “We buy stuff we cannot afford, with money we don’t have, to impress people we don’t even know.” 여기서 "we" 는 현대사회의 대중들을 표현한다. 근데 아까 글 시작할때 “한국사람들이”라고 하긴 했는데 요즘 보면 뭐 미국사람들도 마찬가지인거 같기도 하다.
상점들이 쿠폰을 발행하거나 쎄일을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고객들한테 고마워서 고객들 돈 아끼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 절대 그렇지 않다. 고객들의 돈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이다. 지혜로운 shopper 들도 있다. Grocery shopping 을 하기 전에 미리 여러가지 쿠폰을 준비해 놓고, 꼭 사야 되는 것을 살때 준비한 쿠폰을 내는 사람들. 쿠폰이 없어도 샀을만한 걸 살때 쿠폰을 내면 그게 돈을 아끼는 것이다. 그 외에는 쿠폰을 통해서 돈을 낭비하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 브랜드는 Nike 이다. 회사갈때는 바지 두벌을 번갈아가면서 몇년을 버틸 수 있지만 운동할 때 입는 옷이나 신발은 사도 사도 더 사고 싶다. Nike 앱에선 자주 Sale 을 한다고 notification 이 뜬다. Nike 뿐만이 아니다. Instagram 에는 알고리즘을 따라서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의 제품들만 골라서 올라온다. 10% off 라고 하면 뭐 별 생각없이 지나치지만 30-40% off 라고 되어있으면 꼭 들어가서 눈쇼핑을 하게 된다. Baby Step 하기 전에는 쿠폰이 생기거나 크게 세일을 하는 곳이 있으면 사고 싶었던 것을 사러 갔다. 쿠폰이 생길때까지 인내한 내 자신한테도 뿌듯하고 정말 싼 가격에 구입해서 기뻤다. 그리고 돈을 save 했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25% 깎는 거보다 더 아끼는 방법은 안 사는 거다. 그럼 100% saving 이 된다. 이메일로 쿠폰이 왔을때 좋아하던 내가 이제는 그 이메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지우면서 내 자신을 대견해하곤 한다. 근데 진짜 살게 있거나 budget 내에서의 지출이라면, 쿠폰을 기다렸다가 사는것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것도 사지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번에 budget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지만, budget 을 검소하지만 현실적이게 잡는게 중요하다. 내가 소다를 안 사먹는건 그만큼 돈을 아끼기 위해서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내 budget에서 아끼면 월말에 budget 으로 잡은 돈이 많이 남았을때 약간은 비싸지만 맛있는걸 사먹을수도 있는 것이고, 오랫만에 친구랑 같이 가서 내가 돈을 낼수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는 옷을 거의 안샀었다. 난 중학생때부터 옷을 진짜 좋아하고 옷에 관심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나처럼 옷 없는 사람은 주위에 본적이 없다. “난 옷 같은거에 전혀 신경 안 써”라고 하는 사람도 나보다는 옷이 많을것이다. 옷을 사면 좋긴한데 돈 없는 상황에서 남의 돈(빚)으로 산거라서 찝찝한 마음도 항상 함께 했기 때문이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옷 이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근데 Baby Step 을 하면서 의류에 한달 $40 budget 을 정했다. 그랬더니, 한달 참으면 그 다음달에는 $80짜리 옷도 살수가 있었고, 사면서도 budget 을 오바하지 않았기 때문에 찝찝함 같은건 없었다. 사고 싶은걸 살때 얻는 쾌감과 즐거움은 무시하지 않는다. 근데 한달을 마감하면서 budget에 맞게 돈 썼을때의 자랑스러움과 기쁨 또한 은근히 크다. 그리고 크레딧카드를 하나씩 하나씩 pay off 해나갈 때의 쾌감은 옷사서 얻는 쾌감에 비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빡빡하게 아끼며 살아가는 stage 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적게는 1-2년 길게는 4-5년 그렇게 지나고 나면 훨씬 편하고 좀 더 넉넉해지는 날이 온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