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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구하는회계사 Jul 28. 2024

Epilogue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니, 쓴 글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에서이다. 글을 써서 올릴 때는 나름대로 명백한 이유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이 세상을 위해서 한 일이 하나 더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내가 만든 명분이었다.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고, 실제로 한두 명 정도는 도움을 받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외에 조금 더 깊숙이 살펴보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난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것들을 실행에 옮겼어. 어때? 나 좀 대단하지 않아? 이런 식의 생각이진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갖고 있는 생각이라고 판단했다면 나의 생각들을 드러낼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 생각들을 글로 세상에 알렸을 때는 "난 당신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런 마음들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좋은 책을 써낸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으로 글 쓰는 것을 멈췄다면 그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인류가 놓쳤을 테니 말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좀 특별해"라는 생각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다만 나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글을 쓸만한 사람으로 높여 세운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또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은 딱 하나의 인생밖에 살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배울 것은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세상을 배우는 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것들 중 하나가 "관찰"일 텐데, 그건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정확한 지혜로 다져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는 별거 없는 인생을 살고 있고, 내가 특별히 아는 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나의 이러이러한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해 봤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더라라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면 그건 듣는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데이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가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까 또 맨 처음에 시작했던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라는 말을 번복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근데 위에 말한 이유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한 이유가 있다. 


나는 재정에 관한 글들을 메인으로 쓰고 있고, 가끔 자녀들에 관한 글들도 쓴다. 그리고 재정이라고 하면, 단순히 "돈 버는 법"이나 "부자 되는 법"이 아니라 그것이 왜 삶에 중요한 것인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과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가 돈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투자하는 방식이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대하는 것인데, 내가 지나치게 너무 아끼려고만 하고, 뭐든지 "없어도 살 수 있어"라는 마인드로 살아가니까 나의 wife가 서서히 불평이 쌓여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정이 있는 경우엔 부부가 같은 마음으로 재정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일 순위로 중요한데 아내의 페이스를 고려하지 않고 나 혼자 너무 빠르게 달린 건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까 나의 당당함이 수그러 들었다. 괜히 나처럼 하라고 권했다가 다른 가정에까지 불화를 일으키는 그런 일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글을 안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올해 목표가 "평범하게 벌어서 넉넉하게 사는 삶"이라는 시리즈를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글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각각 다른 토픽에 대해서 쓰다 보니까 사실 끝맺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가 감이 안 잡혔다. 그냥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닫으면 될 것 같다. 


Photo by Florian Klau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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