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家和睦萬福根源 일가화목만복근원
이곳은 제주도의 천지연 폭포입니다. 아마도 앞 선 두 여행기에 소개되었던 곳들보다는 많은 분들이 가보셨을 것 같습니다. 폭호(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물 웅덩이)의 너비가 70m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서귀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용천수가 많이 솟고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수성응회암이 널리 분포하여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폭포가 많습니다.
서귀포의 폭포 중에서도 규모와 경관이 뛰어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바로 천지역 폭포입니다. 게다가 폭포로 가는 길이 완만하고 평탄해서 유모차나 휠체어로 접근하기도 편리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지요. '천지연’이라는 명칭은 하늘과 땅이 만나서 만들어진 연못인 '천지소'가 있는 폭포라는 의미에서 천지연 폭포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폭포의 길이가 22m, 그 아래 못의 깊이가 20m로 가히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이라 불릴만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예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이조 중엽쯤의 일입니다. 이 마을에 얼굴이 어여쁘고 마음이 고우며 행실이 얌전하다고 소문이 난 한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순천. 동네 총각들은 모두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총각 중에 명문이도 끼어 있었죠. 순천이는 열아홉 살이 되자 마을 총각들 중 한 사람이 아닌 부모님이 정해준 이웃 마을 법환리 강씨 댁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마을 총각들은 서운해했고 그중 명문이는 그 후로부터 형편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편 시집을 간 순천은 현모양처로 화목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가을 순천은 술과 떡을 마련하여 친정나들이를 떠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명문이가 서귀포에서 법환으로 이르는 천지연 입구에서 그녀가 친정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날이 어두워질 때쯤 순천이가 천지연 폭포 바로 위에 이르렀을 때 명문이가 불쑥 나타나 순천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순천은 사태의 급박함을 느끼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명문은 누구라도 이 일을 방해한다면 같이 폭포를 뛰어내려 죽겠다고 순천을 협박했습니다. 그때 우르릉 소리와 함께 바로 아래 천지연 물에서 교룡(蛟龍)이 솟구쳐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명문이를 낚아채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교룡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녀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자신의 발밑에 있는 여의주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여의주를 가지고 밤길을 걸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의주를 소중히 보관했습니다. 여의주 덕분인지 그녀의 가정의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며 그 집안에서나 일가에서는 이 모든 일이 며느리 덕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이런 전설이 있어서 인지 부모님과 천지연폭포에 갔을 때 폭포 앞에서 현수언 선생님께서 신혼부부들에게 붓글씨를 써주고 계셨습니다. 아빠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더니 곧 결혼할 저를 위해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하셨고 [一家和睦萬福根源 일가화목만복근원] 휘호를 받았습니다. 아빠께서는 이 휘호를 소중히 서울까지 가져오셔서 표구액자로 만들어 결혼선물로 주셨습니다. "가정의 화목이 만복의 근원이다." 이 휘호 덕분인지 결혼 14년 차인 저희 부부는 만복의 근원인 가정의 화목을 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총 4번의 이사에도 이 커다란 표구액자는 상처 나지 않고 온전하게 저희 곁에 잘 있습니다.
그리고 폭포 앞에서 신랑 신부처럼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쑥스럽다고 안 하겠다고 하시던 부모님을 제가 설득해서 아래와 같이 예쁜 사진도 찍었지요. 안 하겠다 하신 부모님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걸 보니 제가 두 분을 설득하기를 잘했지요? 결혼은 사랑의 맹세이고 서로의 삶을 함께하겠다는 굳은 약속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아보니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헌신과 희생이 필요한 지 그리고 그 헌신과 희생을 통해 얻는 기쁨과 사랑은 또 얼마나 큰 지 하루하루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결혼 14년 차이긴 하지만요.
이번 글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최근에 다녀온 제주도보다 14년 전의 제주도를 많이 생각하게 되어서 인가 봅니다. 5월 21일, 오늘이 '부부의 날' 이기도 하고요. 천지연 폭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집중호우로 자갈과 흙 등이 폭포와 함께 떠밀려 내려와 돌섬이 반복적으로 생기면서 관계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천지연 폭포 아래 물속 깊은 곳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천연기념물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는데 이 돌섬으로 인하여 연못에 퇴적물이 계속적으로 더 쌓이고 물의 흐름이 달라져 무태장어의 서식환경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죠. 처음에는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쌓인 만큼 인위적으로 걷어내는 준설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점점 커지는 돌섬을 계속 놔둘 수 없어 2008년에 한 번, 2017년에 또 한 번 준설을 하였습니다. 관계자들은 집중호우 때마다 반복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부부간의 갈등도 이 돌섬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살다 보면 반복적으로 비슷한 문제들이 나타나겠죠. 오히려 아무 문제가 없다면 한쪽이 과하게 희생하고 있거나 아니면 서로에게 기대나 관심이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손 놓고 있다가 돌섬이 커지면 그제야 돌을 치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때까지 커지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반복되는 갈등요소가 있다면 대화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풀어야 합니다. 갈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결책을 함께 찾아야 하고요. 그것이 만복의 근원인 가정의 화목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