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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시작, 결혼! (2)

그리그 '트롤하우겐의 웨딩데이'

by 에리카
grieghouse.png 노르웨이 베르겐에 위치한 그리그의 저택 트롤하우겐(Troldhaugen)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는 아내 니나(Nina)와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름다운 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은 [서정 소곡집(Lyric Pieces)] 제8권에 수록된 여섯 번째 곡으로 제목은 <트롤하우겐의 웨딩데이> (Wedding Day at Troldhaugen, Op. 65‑6)입니다.



트롤하우겐(Troldhaugen)은 그리그 부부가 살았던 저택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저택의 이름은 노르웨이어의 trold(트롤)과 고대 노르드어 haugr(언덕)에서 유래된 말로, '트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그는 이 지역의 아이들이 저택 근처의 작은 골짜기를 ‘트롤의 계곡’이라 부르는 것을 듣고 자신의 집에 ‘트롤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grieghouse02.png 트롤하우겐의 응접실, 결혼 25주년(1892) 기념으로 선물 받은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보관되어 있다


트롤에 관한 노르웨이 민속 설화도 참 흥미롭습니다. 노르웨이의 설화에서 트롤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존재입니다.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트롤은 장난스럽고 친절한 존재로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거나 위험한 순간에 도와주는 자연의 친구처럼 다가옵니다. 반면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트롤이 무섭고 위협적인 괴물로 보이며 탐욕과 거짓을 벌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국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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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의 작곡 오두막

이 저택에는 본관 외에도 작곡 오두막(Composer’s Hut)이 있습니다. 그리그는 이 오두막 안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놓고 호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작곡에 몰두했겠지요. 저도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 나만의 '피아노 오두막’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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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살렌 Troldsalen

또한 트롤하우겐에는 트롤살렌(Troldsalen)이라는 콘서트홀도 있습니다. 이 공연장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설계 철학에 따라 지어졌으며 가장 큰 특징은 무대 뒤편이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연주 중에도 밖의 풍경—호숫가와 작곡 오두막—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995년 트롤하우겐에 정식으로 박물관이 설립된 이후, 트롤살렌에서는 매년 수백 회의 공연이 열리고 있으며 특히 여름과 가을에는 그리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정기 연주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전에도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전통 민속 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클래식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융합한 작품들로 사랑받았던 그리그가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대와 객석 어느 쪽에서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공간에서는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자연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겠지요. 고요한 호수와 숲, 그리고 그리그가 작곡하던 오두막을 바라보며 그의 음악을 듣는다면 그리그의 예술세계를 가장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edvard-grieg-and-nina-1378293675-view-1.jpg 그리그와 니나

‘은혼식(銀婚式)’은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의 사랑과 헌신을 축하하며, ‘은銀’이라는 재료는 그 관계의 귀하고 깊은 의미를 상징합니다. 그리그가 은혼을 기념하여 <트롤하우겐의 웨딩데이>를 작곡했던 것처럼, 우리도 은혼을 기다리며 서로를 향한 마음의 고백을 미리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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