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사랑의 꿈'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법적으로 부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결혼’입니다. 잘 알려진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도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결혼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이 깊어지던 시기에 작곡한 곡이 바로 '사랑의 꿈'입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 3번은 1850년에 작곡된 세 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작품집 중 마지막 곡입니다. 세 곡은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이 중 3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독립적으로 자주 연주됩니다. 이 곡은 시인 페르디난드 프라일리그라트(Ferdinand Freiligrath)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를 바탕으로 한 가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작품입니다.
1850년, 리스트는 만 39세의 나이로 이 곡을 작곡했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유럽을 누비며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피아니스트의 삶을 뒤로하고 점차 작곡가이자 사상가, 교육자로서의 삶에 집중하고자 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문학과 철학, 종교적 성찰에 깊이 몰두하며 보다 내면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를 음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죠.
‘사랑의 꿈’은 원래 가곡으로 구상된 작품이었습니다. 리스트는 독일 시인 세 명의 시에 곡을 붙였고 이후 이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죠. 특히 3번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삶의 유한성과 사랑의 절실함을 노래한 시를 기반으로 하며 리스트는 이 시를 애틋하고 감미로운 선율에 담아냈습니다.
이 무렵 리스트는 카롤리네 자인-비트겐슈타인(Carolyne zu Sayn-Wittgenstein) 공작부인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1847년, 키예프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단순한 귀족 여인이 아니라 문학과 종교,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리스트는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불타오르는 연애 감정 이상의 정신적 교감과 삶의 철학, 종교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반자를 얻게 됩니다.
이 만남은 그의 삶과 예술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옵니다. 1848년, 리스트는 유럽 순회 연주를 중단하고 독일 바이마르에 정착해 작곡가이자 교육자, 예술감독으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의 곁에는 늘 카롤리네 공작부인이 있었고 그녀는 리스트의 창작을 지지하고 그의 신앙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리스트가 ‘사랑의 꿈’을 작곡하던 1850년, 두 사람은 이미 깊은 연인 관계였으며 로마에서의 결혼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여전히 법적으로 유부녀였기에, 가톨릭 교회의 특별 허가 없이는 결혼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녀는 많은 귀족 여성들이 그러했듯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했고 남편은 군인이자 권위적인 성격으로 그녀를 억압했습니다. 둘 사이에 딸이 있었지만 관계는 일찍부터 소원해졌고 결국 그녀는 우크라이나의 별장으로 홀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공작부인은 남편과의 결혼 무효를 주장하며 수년간 바티칸에 청원했고 리스트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로마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고 1861년 10월 22일, 로마에서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결혼식 전날 밤, 바티칸은 갑작스럽게 공식 허가를 철회합니다. 이는 카롤리네의 가문과 러시아 귀족 사회의 정치적 압력 등이 얽힌 결정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끝내 법적인 부부가 되지 못했지만 정신적 유대는 생의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리스트는 점점 더 종교적인 삶을 선택하게 되었고 결국 하급 성직자(Abbè)의 지위를 얻어 신앙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됩니다. 카롤리네는 로마에 남아 글을 쓰고 종교에 몰두하며 조용한 여생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사랑의 꿈’은 단순한 낭만적인 곡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시의 구절은 리스트에게 있어 사랑의 절실함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인기를 누렸던 그가 공작부인을 만난 이후엔 점점 고요하고 내면적인 길을 걷게 되었고 이 사랑은 그를 스타 연주자에서 고독한 철학자로, 음악과 삶을 깊이있게 이해하려는 작곡가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꿈은 그저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피아노곡이 아니라 리스트 자신의 영혼이 기록된 음악입니다. 그는 이 곡을 통해 조용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늦을 수 있으니, 사랑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아끼라고. 그리고 그 말은 아마도,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남기고 싶었던 가장 진실한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 Ferdinand Freiligrath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페르디난드 프라일리그라트
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 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라!
그 시간이 오고야 만난다,
무덤 앞에 서서 울게 되는 때가.
Und sorge, daß dein Herze glüht
Und Liebe hegt und Liebe trägt,
Solang ihm noch ein ander Herz
In Liebe warm entgegen schlägt!
네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게 하라,
사랑을 품고, 사랑을 나누게 하라.
다른 이의 심장이
사랑으로 따뜻이 뛰고 있을 동안은.
Und wer dir seine Brust erschließt,
O tu ihm, was du kannst, zulieb!
Und mach ihm jede Stunde froh,
Und mach ihm keine Stunde trüb!
네게 마음을 열어준 이에게는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해줘라.
그에게 매 순간을 기쁘게 해주고,
그 어떤 순간도 슬프게 하지 마라.
Und hüte deine Zunge wohl,
Gar leicht ist ein verletztes Wort!
Ach Gott, es war nicht bös gemeint,
Der Andre aber geht und weint...
그리고 네 혀를 잘 다스려라,
상처를 주는 말은 너무 쉽게 나간다.
아, 하느님, 악의는 없었다 하여도
상대는 그 말을 안고 울며 떠난다.
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 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라!
그 시간이 오고야 만난다,
무덤 앞에 서서 울게 되는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