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 '사랑의 기쁨' & '사랑의 슬픔'
오늘 들어볼 음악은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그리고 '사랑의 슬픔'입니다. 사랑의 기쁨 먼저 들어볼까요?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는 세 곡으로 구성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짧은 모음 곡집 [옛 비엔나 춤곡(Alt-Wiener Tanzweisen)]을 작곡하였습니다. 세 곡의 제목은 '사랑의 기쁨' (Liebesfreud), '사랑의 슬픔' (Liebesleid), '사랑스러운 로즈마린' (Schön Rosmarin)입니다. 이 곡들은 모두 빈 왈츠의 선율을 인용하여 작곡되었으며 독립적으로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며 작곡가 본인도 앙코르로 즐겨 이 곡을 연주하였습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20세기 초 가장 사랑받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특유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연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그의 곁에 늘 함께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내, 해리엇 리스(Harriet Lies)입니다.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동반자였고 삶과 음악의 여정에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미국 연주 여행을 떠난 중,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만나게 됩니다. 해리엇은 미국 남부 출신의 지적인 여성이었고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던 중이었습니다. 당시로선 드물게 이혼을 경험한 여성이었지만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그녀의 지성과 품위에 이끌렸고 해리엇은 그의 진심 어린 음악과 인간적인 성품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선 두 사람은 1902년,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결혼은 단 한 번의 예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국적, 문화, 종교적 배경을 가진 이들은 서로를 온전히 존중하고자 무려 세 번의 결혼식을 올립니다. 먼저 1902년, 런던에서의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결혼식을 올리고 3년 뒤 미국 뉴저지에서 한번 더 결혼식을 합니다. 세 번째 예식은 1947년 3월 29일 뉴욕주 뉴로셸의 성체 성당에서 신부의 주재하에 이루어졌습니다. 해리엇의 전남편 프레드 워츠의 죽음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합법적인 결혼이 가능해졌기에 첫 번째 예식 이후 45년이 지난 뒤 다시 결혼식을 올린 것입니다.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도 진실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두 사람의 삶에 평온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크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 군 장교로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세계적인 연주자였지만 조국의 부름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 해리엇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 자원 간호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부상자들의 고통을 가까이서 마주했습니다.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수많은 편지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걱정하며 전쟁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 시기의 편지들에는 단지 안부를 묻는 말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깊은 애정과 연대가 담겨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두 사람은 혼란스러운 유럽을 떠나 미국 뉴욕에 정착하게 됩니다. 프리츠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다시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해리엇은 무대 뒤에서 그의 건강과 일정을 돌보며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이자 조용한 조력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녀 없이 살아갔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는 그 어떤 부부보다도 깊고 단단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고 연주 활동에서 멀어지게 되었을 때에도 해리엇은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세 번의 결혼 서약처럼, 끝까지 함께였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와 해리엇의 이야기는 단지 유명한 음악가의 뒷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와 종교, 전쟁과 시련을 뛰어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사랑과 존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요한 선율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들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영상 속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는 타고난 감성과 놀라운 기량으로 사랑받은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고 국제무대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2016년 10월, 연주를 앞둔 부산의 한 호텔 근처 택시 안에서 심장 이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당시 그는 만 30세였습니다.
크라이슬러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심장병으로 8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복잡한 세계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국적을 옮겨 다니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지만 사랑하는 동반자와 60년을 함께 살아갔던 복이 있었지요.
너무 일찍 하늘로 간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님을 그리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