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에서 초콜릿 박물관이 있는 브혹(Broc)까지는 아름다운 레만호숫가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렌터카 여행을 할 때 드라이브하면서 내가 원하는 풍경을 보려면 구글맵이나 waze 내비게이션앱에서 가르쳐주는 길로 가면 안 되고 내가 원하는 도로로 갈 수 있도록 경유지를 설정해야 한다. 도착지까지의 시간은 13분 차이지만 1번 루트로 가면 호수를 감상할 수 없고 2번 루트로 가야 호수를 보면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
1번은 경유지를 넣지 않았을 때, 2번은 호숫가의 한 지점을 경유지로 넣었을 때
생각보다 길어진 로잔 뤼민궁전의 박물관 관람에 몽트뢰나 브베이 중 한 도시를 들리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그냥 드라이브를 하면서 레만호를 보고 바로 초콜릿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코스 중 하나여서 빨리 가고 싶어 하기도 했고 박물관에 가면 초콜릿을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아침부터 달달한 간식을 먹지 말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가족 모두 당이 떨어져 있었다. ㅎㅎ 때마침 날은 아주 맑고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도로도 한산해서 천천히 경치를 보며 가던 중 오! 호숫가 바로 앞에 기차역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어머, 너무 낭만적이잖아! 극 F의 나는 이런 낭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잠시 쉬어갈 것을 제안했고 우리는 얼른 기차역 옆에 주차를 하고 호숫가로 걸어갔다.
챙겨두었던 견과류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어 잔잔한 호숫가에 앉아 먹으며 햇살을 만끽했다. 렌터카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무거운 텀블러나 음료, 간식류를 차에 비치해 두면 언제든 편하게 꺼내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카페인 없는 둥굴레차를 한국에서 챙겨 와서 매일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 2개의 보온병에 커피와 차를 나눠 담았다. 나는 한국에서도 약속이 없으면 부러 카페에 가지 않는 편인데, 집에서 충분히 맛있는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집이 카페보다 편안하고 집중도 잘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공부도 도서관보다는 집에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ㅎㅎ 여행 중에도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에 가거나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러 베이커리는 많이 갔지만 카페는 거의 가질 않았다.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햇살을 받으며 탁 트인 공간에 있는 것이 좋았다. 거기다 유럽은 노상취식(?)이 흔한 편이라 어딜 가도 벤치나 피크닉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고 쓰레기통도 많아서 편안하게 먹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일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다행히도 여행 중 날씨요정이 자주 함께해 준 덕분에 별로 춥지 않았고 양질의 비타민D를 생성할 수 있었다. (유럽의 가을햇살은 매우 강하니 선글라스, 선크림, 모자 필수입니다!)
메죵 까이에 초콜릿 박물관은 생각보다 도심지에서 멀고 외진 곳에 있었다. 초콜릿 박물관으로 운영되지만 공장으로도 사용했던 곳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외진 곳에서 어떻게 재료들을 수급해서 생산하고 각지로 공급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스위스에서 융프라우 다음으로 많은 사람을 본 게 메죵 까이에였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초콜릿의 진한 향기를 맡으며 박물관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이라니! ㅎㅎ
2010년 기준, 연간 4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한다는 이곳은 여러 언어로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는데 한국어도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는 관광 비수기라는 11월이었는데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관광 하이 시즌에 방문 계획이 있다면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물관은 초콜릿의 시작인 카카오 열매의 발견부터 까이에의 탄생, 네슬레와의 합병, 지금의 공장의 모습까지 방을 이동하며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한 편의 연극처럼 연출해서 보여주는데 아이들이 아주 재밌어했다. 1898년 창립자의 손자인 알렉상드르 루이 까이에(Alexandre-Louis Cailler)가 그뤼에르 지역의 브혹(Broc)에 공장을 세운 건 맛있는 우유와 깨끗한 물을 구하기 좋고 풍경이 아름다워서였다고 한다. 과연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주변 풍경이 아래와 같았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한 투어가 끝나면 카카오 열매, 헤이즐넛, 아몬드와 같이 초콜릿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재료들이 어디서 생산되고 어떻게 선별되는지 보여주는 전시가 있고 (직접 먹어보거나 만져보거나 향을 맡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다음은 모두가 기다리는 시식코너가 있다. 포장된 작은 초콜릿을 나눠주는 직원분은 아시안들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건지 우리 순서가 되자 아주 뛰어난 발음의 한국어로 "초콜릿! 많이! 드려요! 감사합니다!" 스타카토로 외치셨고 우리도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넸다. 한주먹 가까이 밀크초콜릿을 받았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 코너에서는 종류별로 밀크, 다크, 프랄린, 캐러멜, 솔트 등 다양한 초콜릿을 바로 먹어볼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진한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까이에 초콜릿은 뛰어난 스위스 우유를 사용해서인지 밀크 초콜릿이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까이에 초콜릿은 수출하지 않고 스위스 국내에서만 판매된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투어 끝나고 나와서 뮤지엄샵에서 잔뜩 샀을 텐데. ㅠㅠ 내가 단것을 한 번에 많이 못 먹는 거에 한탄을, 한탄을 하며 ㅎㅎ 박물관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