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11월 4일 ①
까이에 초콜릿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황금빛의 노을을 바라보며 인근의 농장 별채 숙소로 향했다.
https://www.airbnb.co.kr/rooms/946181803387408028
이곳은 농장에 있는 별채로 독립된 건물이라 공간이 정말 넓었다. 특히 1층 부엌에는 벽난로와 장작으로 빵을 구울 수 있는 화덕오븐이 있고 낡았지만 튼튼해 보이는 커다란 하얀 그릇장과 6인용 식탁이 있었다. 꼭 빨강머리 앤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빨강머리 앤 덕후다.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책으로도 읽고 넷플릭스에 있는 드라마도 몇 번씩이나 봤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강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여리고 본인의 콤플렉스에 괴로워하면서도 성장해 나가는 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대견해서 옆에 친구로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솔직하게 본인을 드러낼 때는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초콜릿의 여파로 모두 얼큰한 음식을 먹고 싶어 했고 이때다 싶어 아껴둔 한국에서 챙겨 온 라면을 끓이고 호스트가 선물로 준비해 준 농장에서 갓 생산한 신선한 계란을 프라이해서 함께 먹었다. 역시 라면이 최고야.
다음날 아침, 날씨가 또 기막히게 좋다! 어제 라면을 먹었더니 다들 또 한식이 먹고 싶다 하여 이번엔 비장의 무기 누룽지와 고추참치, 볶음김치 캔을 꺼냈다. 뜨끈한 누룽지로 속을 채우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앞뜰의 예쁜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커피도 한잔하고 뒤뜰의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타고 넓은 방목장이 있는 농장도 한 바퀴 돌고... 하루만 지내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주인집 앞에 반려견 헥터가 그림같이 앉아 있었다. 어젯밤 체크인 할 때 호스트님이 "혹시 큰 개를 무서워하세요? 우리 집에 큰 개가 있는데 아주 온순해요." 설명을 해주었었는데, 아! 네가 바로 그 큰 개구나. ㅎㅎ 역시 호스트님 설명대로 헥터는 아주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친구여서 아이들이 실컷 만지고 한참을 함께 놀았다.
헥터와 같은 견종의 인형이 스위스의 기념품 가게에서 많이 보이고 실제 키우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스위스 베른과 알프스 지방의 견종으로 이름은 버니즈 마운틴 독(Bernese Mountain Dog)이다. 몸집이 큰 대형견으로 힘도 세서 가축을 몰거나 짐차를 나르는 일을 하는 개로 많이 길러졌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Bernese_Mountain_Dog) 우리나라에 진돗개가 있으면 스위스에는 버니즈 마운틴 독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쉽지만 이제 또 길을 떠나야 할 때, 다른 숙소들과 마찬가지로 약과와 둥굴레차를 선물로 놔두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이다. 버니즈 마운틱 독의 '버니즈'에 해당하는 도시가 되겠다.
네이버에 '베른'을 검색하면 딱 한 줄로 요약된 설명이 나온다.
스위스의 수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자, 그럼 궁금하니 스위스도 검색해 보자.
나에게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1. 부자나라 2. 시계 3. 은행 4. 알프스 소녀 하이디 5. 요들송 이 정도였다. 사실 1~3번 까지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스위스는 일찍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정책을 통해서 국제 갈등에서 거리를 두고 유럽 각국의 중재국으로서 자리매김을 하였다. 따라서 스위스는 여러 나라의 대사관과 국제기구의 본부의 호스트 역할을 하게 되고 또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유대인들의 돈은 지켜주고 독일에는 무기를 팔면서 스위스의 금융사업이 융성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19세기부터 외국인에게 안전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투자자와 기업이 스위스 은행을 선택하게 되었고 현재 스위스의 화폐는 전 세계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자 각종 위기상황의 자금도피처가 되었다. 그리고 스위스는 시계산업만으로 한 해 40조가 넘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아날로그시계의 생명이 끝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해가 갈수록 아날로그시계의 매출액은 늘어나고 그 1위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스위스 시계가 차지하고 있다.
1~3번이 경제력 이야기라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요들송은 관광산업 이야기이다. 스위스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엄청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산과 호수의 나라'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스위스는 융프라우, 체르마트, 리기산과 같은 높은 산봉우리와 레만 호수, 브리엔츠 호수, 튠 호수, 외시넨 호수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수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 이를 관광객들이 찾아갈 수 있게 케이블카, 곤돌라, 산악열차, 푸니쿨라, 고속열차와 같은 다양한 이동수단을 운영하고 계절에 맞춰 스키, 스노보드, 페러글라이딩과 같은 레저활동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뛰어난 미술관, 박물관, 건축물을 스위스 곳곳에 찾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은 스위스는 역사 속 그들이 해온 정치적인 선택과 안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 금융시스템, 그리고 관광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천문학적인 관광수입을 벌어들이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 반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부자나라의 수도 '베른'을 간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과 비슷할까, 완전 다른 모습일까?! 궁금증을 안고 베른으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