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파파 Oct 13. 2020

나의 강아지

제제와 함께 살기로 했다

내겐 4살이 갓 넘은 반려견이 있다.

골든리트리버 모견과 진돗개 부견 사이에서 태어난 믹스견으로 대형견에 속한다.

주인에게 학대를 받고 방치된 생활을 하던 모견은 뜻하지 않게 임신이 되었, 새끼들을 낳은 지 얼마 못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남은 새끼들은 구조되어 의왕시에 있는 한 마을 사람에게 임시보호되었다.


2016년 8월의 끝자락

여름이라 하기엔 그렇게 더운 날은 아니었 걸로 기억한다.

갈 곳 없는 강아지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지인의 말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차를 몰아 의왕시로 갔다.

마당이 넓은 집 한 채에 하얀 솜뭉치 같은 녀석들이 반겨주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녀석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행히도 6마리의 새끼들 중 2마리를 제외한 녀석들 모두 입양이 정해졌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남은 2마리 모두 데려가기에는 부담이 되어 1마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릴 겸 임보 중이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한 녀석이 내 손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게 나와 제제의 첫 만남이다.

(남은 한 마리도 좋은 보호자에게 입양되었다)


집으로 온 녀석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잤다.

새벽 5시 30분에 먼저 일어나 밥을 달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고, 밥을 먹은 후에는 똥오줌을 싸겠다며 문 앞에서 낑낑거렸다.

아마 임보 하시던 분의 생활패턴인 듯했다.

그렇게 녀석은 용변을 보고 들어와 다시 잠을 잤다.

난 이미 잠이 달아나버렸는데...


제제는 4년 동안 실외 배변 생활을 했다.

진돗개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깔끔 떠는 느낌이다.

집에 온 지 한두 달 정도는 실내에서 소변을 봤고, 대변은 무조건 실외에서 해결해야 했다.

설사병이 났을 때에도 문 앞에서 헉헉거리면서 버텼고, 이상함을 느껴 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설사를 뿜어냈었다.

한두 달이 지난 후에는 소변마저도 실외에서 해결했다.

녀석과 나는 4년이 넘게 하루 3번을 산책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 장마, 폭염, 폭설 등이 오나...)


최근에 이사를 했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에 한강이 있었다.

하루 한 번은 꼭 한강에서 산책을 하려 노력했고, 덕분에 야경은 실컷 봤다.

한강에는 많은 강아지 친구들이 있었고, 매주 목요일에는 리트리버 모임도 있었다.

덕분에 어린 제제는 따로 사회성 훈련이 필요 없었다.

그냥 그 개판(?)에 두고 강하게 키웠던 거 같다.

몇몇 개들한테 물리는 작은 사고들이 있긴 했지만, 굳이 얼굴 붉히진 않았다.

집에서 혼자 쌍욕은 했었지만.


제제가 2살이 될 때 즈음, 난 인생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승단심사에서 떨어지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친구들과 멀어지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까지 떨어져 내려갔다.

공부를 놓을 수 없어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제제를 데리고 3시간씩 한강을 걸었다.

한겨울이 제 몸에 맞았던 녀석은 신나게 돌아다녔고, 나 역시 매일 그렇게 기분전환을 했다.

덕분에 난 우울증이란 병에 발만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내 인생의 암흑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녀석이 없었다면 난 아마...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흔히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얘기하는 이 친구를 보면서, 말하는 사람에게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

긍정이 무엇인지, 책임이 무엇인지 또, 교감이 무엇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가끔 사고를 치면서(벽지나 신발을 다 뜯어버린다거나) 속을 뒤집어 놓았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내 잘못이니까 하며 넘어가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주 세게 꿀밤을 먹이고 싶었지만.


난 가끔 극단적으로 말해 녀석이 죽는 상상을 한다.

대형견의 수명은 평균 10~12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바꿔 말해 녀석은 자신의 생의 절반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녀석이 수명을 다하는 날이 온다면 난 온전한 삶을, 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아니,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내 옆에 없는 상상을 해야 한다.

귀찮고 힘든 산책도, 집 안에 널브러져 있는 녀석의 장난감들도.


녀석을 데려오면서 했던 다짐이 있다.

"널 꼭 행복하게 해 줄게."

지금은 물어보고 싶다.

"넌 지금 행복하니?"

그리고 훗날, 오지 않았으면 하는 녀석의 마지막 날에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아빠를 만나서 행복했니?"


제제야.

내 첫 반려견 아니, 딸 제제야.

지금도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너를 보니 아빠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최근에 힘든 수술도 잘 넘어가 줘서 얼마나 고마운 지 몰라.

4년을 넘게 같이 지내면서 아빠는 네가 참 고맙단다.

인생에서 가장 큰 책임감이란 단어를 알게 됐고, 누군가를 위해 땀 흘려 돈을 버는 행위가 얼마나 신성한 행동이라는 것인지도 배우게 됐어.

아빠도 얼마 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즐거울 거야.

먼 훗날,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 날이 올 때에도 너의 생에 최고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루하루가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

나쁜 기억 하나 없이 꿈같은 일들만 잔뜩 안고 갈 수 있게, 영원히 철들지 않았으면 하는 너의 생을 위해 아빠가 계속 노력할게.

그러니까 아프지만 말자.

항상 건강하고 재밌게 놀자.

내 평생 최고의 순간들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오늘도 즐거운 추억 만들어보자.

제제야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