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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순 없다 (아빠vs세이펜)

by B디자이너 지미박

잠자리 들기 전 둘째 아들내미에게 책 한 권씩 읽어주는 게 우리 부자의 루틴이다.

(근데 한 권만 읽을 시간밖에 없는데 항상 꼭 두 권씩 가져오는 아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누나가 어릴 적 쓰다가 방치해서 한동안 잠자고 있던 세이펜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어느 날은 나한테 ”아빠가 안 읽어줘도 돼“라며 세이펜에 맡기기 시작한 것.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이불 위 놓여있는 책과 세이펜. 심지어 경주용 차 모양으로 아들내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이펜이 AI도 아닌데, 기계에게 일자리, Job을 빼앗기는 기분이 이런 걸까? (비밀이지만 가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기계에게 아빠의 Job과 역할을 매일 뺏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이펜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한 사운드보다 더욱 리얼하고 재미있게 묘사하는 것밖에..


아들 녀석 입장에선 아빠가 더 재밌게 읽어주니 나쁠 게 없다. 그나저나 이런 게 시장논리인가. 결국 경쟁은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거니까? 아들 녀석 책 읽어주는 역할 하나로 참 별생각이 든다.


어쨌든 기계에게 내 Job을 뺏기지 않아야겠고,

아들 녀석이 한글을 척척 읽게 돼서 ”이제 혼자 읽을래“ 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이 순간들을 즐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 밤에도 잠자리 들기 전 세이펜과의 경쟁에 건투를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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