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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약사언니 Jul 21. 2020

굴욕, 화장실에서 점심 먹다

열심히 살고 있는 순간에도 고난은 찾아왔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미국 고등학교 재학 1학년, 미국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던 내 마음은 미국인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렵고 무서움 마음보다는 막연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하얀 피부에 금발머리, 푸른 눈을 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겠지? 생각하며 벅찼던 날들이 기억난다.


백인들이 만들어낸 백인우월주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었을까?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SF영화에 매력을 느꼈던 탓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미국인들과 베스트 프렌드를 맺으며 교정을 거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상상은, 미국 학교 입학 첫 주부터 엇나가고 만다.


 미국 학교의 커리큘럼은 한국과는 다르게 매 교시마다 교실을 옮겨 내가 선택한 과목의 강의실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한국처럼 한 교실에 머무르면 알아서 선생님들이 찾아와 수업을 해주시고, 점심 또한 같은 자리에 앉아있으면 급식차가 와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미국 학교의 점심은 카페테리아를 찾아가서 급식판을 받아 점심을 배식받는 구조였다.


 미국 학교 입학 첫날부터 나는 점심시간에 어떻게 하는지 몰라 방황해야 했다. 점심시간의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어디론가 가는 듯하더니 학교 건물 안에 남아있는 학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너무 당황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방황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학교 도서관을 관리하시는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점심시간에는 학교 건물 안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도서관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당황 한 나는 갑자기 도서관 밖으로 쫓겨나가서 학교 건물 밖 벽에 붙어서 홀로 수업시간 종이 칠 때까지 서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하루 종일 고민을 하였다. 나는 학교에 새로 온 전학생이었고,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처럼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같은 교실을 공유하는 학업분위기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특히 이때의 나는 영어에 자신도 없었다. 내가 말을 건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못 알아들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떨어진 상태였다. 이 날 점심부터 그다음 날 점심 전까지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만나는 미국인들은 다 초면이었기 때문에, 낯설고 무서웠기에 어떤 친구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그다음 날도 학교 도서관에 숨어 들어가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도서관에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결국 선생님과 또 마주쳤고, 선생님은 “너 여기서 뭐하니? 학교 안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지? 빨리 나가렴!” 이라며 호통을 치셨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계속 굶을 수 없었고, 친구도 만들어야 했다.


 미국 학교 등교 세 번째 날, 학교로 향하는 스쿨버스에서부터 어떤 친구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계속 생각했다. 이런저런 말들을 영작해 보면서 미국인 친구와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영작해 보았다.


 그때, 곰돌이 푸 같이 생긴 편안한 인상의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물어보기로 결심했고,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점심을 같이 먹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는 데 성공했다. 그 친구와는 점심시간 종이 치면 학교 도서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점심시간 전까지 수업을 듣는 내내 그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무슨 말을 나누면 좋을지 고민했다. 학교 수업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고, 내 마음은 미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 나를 소개를 하는 영어부터 일상생활을 위한 영어까지 여러 문장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드디어 또래 미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친구와의 약속 장소였던 도서관으로 향하였다. 신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그렇게 친구를 기다렸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을 도서관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끝내 30분이 지나도 이 친구는 오지 않았다.


 나는 너무 당황했고,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고대하던 순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산될 수 없었다. 도서관 선생님께 또 혼날 것이 두려웠던 나는, 점심이 든 가방을 가지고 화장실로 도피했다.


 그렇게 화장실 한 칸에 앉아서 점심시간 내내 울었던 것 같다.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이 이상으로 어떻게 해야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 몰랐다. 용기를 쥐어짜 내서 친구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물어봤고, 친구도 승낙했다. 그런데 친구는 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일까? 시작부터 어렵기만 했던 미국 정착이 나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하여 주눅이 들어있던 나는 그 후 며칠간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화장실로 향하였다. 배도 고팠고, 기력도 딸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초라한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점심으로 싸갔던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화장실 안에서 먹기 시작했다.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 있을 수 있었기에 차라리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 평화도 며칠 가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학교 안에 있던 나를 수상하게 생각했던 도서관 선생님께서 내가 숨어있던 화장실로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신 것이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화장실 안에서 점심시간 내내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시지는 않았지만, 계속 의심쩍인 눈초리로 나를 감시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화장실 안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 밤을 고민했다. 며칠 후 점심시간,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고, 물어물어 학교 카페테리아를 찾아 가보기로 했다. 어렵게 찾은 학교 카페테리아. 모든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수많은 학생들의 급식 줄 속에서 나는 나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던 친구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저기, 우리 그때 학교 도서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던 거 기억나니? 우리 같이 점심 먹기로 했었잖아.”


 그 친구가 말했다. “아, 맞다. 나 까먹었어.”


 내게는 굉장히 소중한 순간이었고, 약속이었는데 이 친구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까먹었다는 친구의 말에 배신감마저 들 정도였다. 이 사건은 나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미국인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라는 타지에 와서 새로운 언어로 수업을 듣고, 적응을 하려던 것부터가 나에게는 세상이라는 알을 깨고 부화하는 과정이었다. 용기를 냈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더 큰 용기와 더 많은 열심을 요구하곤 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욕심부터 버려야 했다. 시간은 내가 계획한 데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나의 comfort zone (안전지대) 안에 있지 않았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황들 속에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들과 만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났다고 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그 상황과 대치한다면 우울한 감정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가짐이었다.


 새로운 환경들 속에서 새로운 도전들이 필수인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며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하듯,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의 세계를 하나씩 부수어낼 때, 한 층 더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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