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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10. 2023

집 한구석에서 가족이 죽어갈 때





“나는 오직 여기 병원 약만 들어, 

내가 계속 혈압이 조절이 안 돼서, 

막 널뛰기하더니 여기 와서야 잡혔어.”



처방전을 보고 연세를 살핀다. 74세 여성. 

사실 동네 약국에서 근무하면서 접하는 

어르신들께서 일반적으로 드시는 혈압약은 

대부분 말초혈관을 확장해 주는 칼슘 차단제다. 


그런데 왜 여기 약만 잘 들을까? 

가만 보니, 신경안정제가 같이 들어가 있다.



“혈압이 도저히 안 잡혀서, 막 심장내과에도 가보고, 

갔더니 별수가 없대.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대. 

그래서 혈액내과를 가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혈액내과에 갔더니 뭐? 면역글로브?”

“면역글로불린?”


“응응 그런가 봐. 희귀병이라는 거야. 

폐 옆에 뭐가 보인다고. 그것 때문일 수 있다고. 

근데 약도 없대. 치료도 못 한대. 

그래서 선생님, 이게 약도 없고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까, 

항암제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70이 넘은 할머니 폐에 생긴 이상해 보이는 조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간주했을 수도 있다. 

혹은 그와 관계없이 일단 이상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항암제라는 의료적 선택지를 말씀하셨던 상황이었을 것 같다. 

아마도 할머니는 항암제라는 말을 듣고 무척 충격을 받고 놀라셨을 것이다.



"그러더니 또 류머티스 쪽에 가보라는 거야. 그래서 또 갔지. 

그랬더니 이게 뭔지 확실하게, 자기들은 확실하게 밝혀내야 한다면서. 

그러면서 CT도 막 몇 번씩 찍고. 그거 엎드려서 들어갔다 나왔다 몇 번씩 하고. 

그러고서는 여기를 째서 찌르더라고. 조직을 뜯어내서. 

눈으로 보기에는 면역글로브? 인데, 조직 검사를 꼭 해봐야 안다는 거야. 

그래서 또 그거 하고, 결과 보러 오라 해서 갔더니, 면역글로불린 그거래. 

근데 그게 폐 옆에 있는 거라 위험할 수 있으니까,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까 며칠 입원하라고 하더라고. 

내가 고생을 고생을 기운도 하나도 없고.”



그랬을 거다. 

병원에서는 확실한 생리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서, 

진단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환자의 몸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환자가 어려움을 호소하며 찾아왔는데, 

그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해주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 믿을 것이다. 

다른 병원에서 검사결과지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다시 꼼꼼히 새롭게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기로 했다. 

신경안정제를 힌트 삼아, 바로 여쭤본다.



“언제부터 혈압이 조절 안 되셨었어요?”

“작년 추석 때부터.”

“왜요, 추석에 뭐 힘든 일 있으셨어요?”


“내가 작년 여름에 추석 아래, 막 식은땀을 말도 못 하게 흘리는 거야.

땀을, 침대 커버가 다 젖을 정도로 흘리고 기운을 못 차리겠어서. 

아들이 엄마 00 병원 좋아하니까, 가서 주사 영양제라도 맞자. 

내일 와서 맞자 했는데, 그날 내가 쓰러진 거야, 새벽쯤. 

내가 한 2시쯤 일어났는데, 그 뒤에는 잊어버렸어. 

그런데 세상에 기절해서 마루에 쓰러져 있는데, 

우리 아저씨가 나를 그냥 놔둔 거 있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아직도 그때의 격정이 고스란히 올라오시는지. 

말씀하시면서 음정이 불안하고, 온몸이 떨리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딸이 1시쯤 돼서 전화했었나 봐. 

딸이 평소에도 전화를 자주 했는데, 

아빠, 엄마가 왜 이렇게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아. 

그게 엄마가 이렇게 전화를 안 받을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잠도 많아서 잠을 잘 사람도 아니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그 이튿날 점심때까지 놔두는 사람이 어딨어!! 

그것도 방에도 아니고 거실 앞에서 누워버렸는데!"



할머니의 감정이 너무 격렬하게 다가와서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 마음 한쪽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런 자녀가 되지 못하는데... 하는 자책과 함께 

과거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딸이 막 애들 보내놓고 막 부랴부랴 차를 밟고 오니까, 

엄마가 마루에 팍 쓰러지고 기절해서 있더래. 

엄마, 엄마, 울고 막 난리를 치면서 흔들어도 눈만 멀렁 뜨고, 

눈도 감지도 못 하고, 눈만 떼굴렁 뜨더란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죽었으면 눈을 못 뜨는데, 

안 죽었으니까 그래서 눈을 뜨는가 보다 싶어서, 

딸이, 오빠보고 119 빨리 전화하라고. 

우리 딸은 이제 119가 빨리 안 오면 어떡하나 막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그래도 119가 빨리 왔대.”



정말 다행이었다. 

혈압이 들쑥날쑥했던 이유는 이것이었을까? 

심장은 뇌 다음으로 신경 분포가 많아 마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장기이다. 

우리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충격을 받으면, 심장의 움직임이 과해지는 이유다.


내가 누군가와 살고 있어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남도 아닌, 지난 몇십 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일 경우,

나에게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는 그 사람에 대한 

실망과 분노, 배신감과 혐오감이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절했으면 애들한테 너 엄마가 이렇다고, 연락이라도 해야지. 

세상에 어떻게 같이 사는 마누라가 (쓰러졌는데)! 

여태까지 내가 그런 인간이랑 살았어. 

10시간이나 기절해서 누워있는데도 

119 불러서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을 해야지, 

그걸 그냥 놔두는 남편하고 내가 살아야 하나?! 

이런 거를 너무 신경 쓰니까, 잠도 못 자고… 

내가 딴 거는 소원이 없어. 

내가 남편 머릿속을 현미경으로 한번 들여다봤으면, 그게 소원이다! 

개념이 없어요! 걱정도 없고, 돈도 걱정 안 하고. 

바깥도 몰라. 누구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안 하고 사냐고! 오로지 제 생각밖에 없는 거야. 

지는 가정도 못 돌보고 살면서, 자기 생각만 무조건 옳고.”



내가 쓰러져 죽을 지도 모르는데, 

나를 구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남편을 매일 마주하기도 힘들 것 같다. 

그런데 같이 곁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까. 

매일 밤 억울하고 불안하고 잠을 못 자는데 

어떻게 혈압이 정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애초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던 희귀병, 

자가면역글로불린이니, 항암제 투여니,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옛날에 내가 젊을 때, 

너무 무능력해서 못 살겠다고 달려들었더니, 

어떻게 어디다 밀었는지 벽에 부딪혀서 기절해서 못 깨어난 거야. 

한참 얼마 지났던 것 같아. 

이제 엄마가 안 깨어나니까, 

우리 아들이 네 살 때 얘기야. 

문을 열고 아줌마! 우리 엄마 죽었어요! 우리 엄마 죽었어요! 그러는 거야. 

이제 내가 깨어나려 하니까 그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때도 그렇게 기절했을 때도 병원도 데리고 갈 생각도 안 하고, 

저러다 깨어나겠지. 

그러면서 내가 생각할 때, 이제 내가 살면서 결과가 나온 거잖아. 

빨리 가면 병원 가서 살 수 있는 것도 우리 영감이 저렇게 10시간 놔둬서. 

우리 딸이 전화를 안 했으면, 

내가 저녁까지 누워있었으면 죽었지, 살지를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생각을 내가 맨날 하고 살았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 초반에 있었던 갈등과 위험은 사는 내내 할머니의 불안 요소였을 것이다. 

이 사람과 살면서 언젠가는 내가 이런 일을 또 겪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품고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쉽게 삭히지 않으셨을 것이다. 

지난 추석에 쓰러진 일은, 할머니께 결혼 초반에 일어났던 

그 40여 전의 일과 이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은 우리 동생이 새벽에 나오다가 얼음에 미끄러져 머리를 다쳐서, 

수술하려고 머리를 다 깎였더라고. 

그렇게 수술을 했는데 20일을 안 깨어나는 거야. 

그래서 중환자실에서 교대로 지키고. 

거기서 이제 어떤 여자가, 자기 아는 여자도 남편하고 낮에 싸웠는데, 

남편이 나갔다가 저녁에 와서 보니까 여자가 누워있더래. 

그래서 술에 취해서 누워있나 보다 하고, 

그냥 그러고 놔두고 아침에 나가버린 거야. 

그렇게 조금만 일찍 왔으면 이제 깨어나는 건데, 

너무 늦게 와서 여자가 안 깨어나는 거야, 수술했는데도. 

그래서 나는 내가 만약에 당하면 저 여자처럼 되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는데, 

그 결과를 작년 추석 아래 그거를 경험했잖아. 

우리 영감탱이가 그래 다쳐서 내가 기절해 가지고 10시간이나 누워 있었는데도, 

병원도 데리고 안 가고, 자식들한테 전화도 한 통 안 하고."



저 무심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자는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내가 쓰러져있다고 해도 구해주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둘 것이라는 두려움. 

40년 가까이 품고 왔던 불안과 의심을 생생하게 체험한 뒤,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마음의 연관성이 스스로 파악되지 못한 상태에서 

혈압 조절제만으로는 그 분노와 절망, 무기력, 불안, 공포를 누르지 못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내 마음은, 또 나의 문제로 불편해지고 있었다. 

아빠가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채로 

집안에 누워계신 지 일 년쯤 지났을 어느 날이다. 


목욕을 마치고 힘들어하시며 아빠는 방까지 몸을 끌고 오시지 못하고 계셨다. 

그날따라 나는 엄마를 졸라 새 옷을 사 입고서 무척 신이 난 상태였다. 

아빠 앞에서 새로 산 치마를 한번 펼치며 돌아 보였고, 

아빠는 ‘그래, 참 예쁘다.’라며 미소를 지어주시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리셨다. 

네다섯 시간쯤 지나서였을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누워 계시는 자리가 소변으로 흥건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엄마와 나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혼수상태에서도 코를 콜 수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주무시다가 곧 일어나시지 않을까? 정도로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잠이 드셨다고만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구조대를 불렀고, 들것에 묶여 아빠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계단을 거칠게 내려갈 때마다 

나는 아빠의 머릿속에 피가 번지는 것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질렸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한다고 해도 의식이 돌아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 수업 시간에 교복을 입고 앉아서 한없이 가볍게 나불거렸던 안락사 논의는, 

어느새 내가 아빠를 두고 직면한 초통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큰집 식구들과 병원에 앉아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야 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뒤틀려버린 눈과 마비된 신체에 묶여 누워계시던 아빠의 귀 뒤로 

하염없이 적셔 내리던 눈물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나는 아빠가 생전에 자리했던 곳에 그대로 누워, 

나의 눈에서 새 나오는 그것이 아빠와 닮아있기를, 

그렇게라도 아빠의 마음과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도 간절하게도 원하고 또 원했다.


아빠는 다시 일어나고 싶으셨을까? 

깨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셨을까? 

깨어났다면, 오늘 그 할머니처럼 억울하고 원망 섞인 격정을 토하셨을까? 

누워계시던 일 년 동안 가족에게 짜증 한번 부리지 않고 혼자 삭히시던 아빠, 

악한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감상을 친구분께 듣던 아빠, 

정신을 잃기 직전에도 철없는 딸에게 예쁘다고 해주시던 아빠. 


나는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우선시하느라, 

혼자 거동이 불편했을 아빠를 외면했던 기억들이 괴로웠다.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었던 다리를 도끼로 동강 내고 싶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수용하는 나의 방식은 그런 식이었다. 

내가 의대에 가려고 하지만 않았으면, 

아빠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고, 

엄마도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욕망과 꿈을 모두 제거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무심할 수밖에 없는 존재 같다고 생각하며 

내가 나라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가 없는 세상에도 

웃음과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이 분노했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대상이 더 이상 살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죽음의 냄새를 깊게 새긴 채, 

차마 말 못 할 원망과 의구심을 지우려 애썼다. 

나만 나를 벌하면 된다고 믿으며, 

그러면서도 치사스러운 구원을 꿈꾸며.




나와 그 할아버지는 얼마큼 다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해결하지 못한 자기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면 

온전히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주지 못하고 이내 감정이 혼란스러워진다. 

누군가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래서 자기 삶의 문제부터 먼저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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