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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속에서 쇠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속에서 쇠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마르고 힘이 없어 보이는 60대 여성. 


처방받은 약이 

자신의 증상에 맞는지 궁금해 묻는다. 


그녀는 온몸에 기운이 없다고 했다. 

위산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속에서 마치 쇠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단다.


“너무 배가 고파서 먹고 싶지만, 

이내 속이 매스꺼워서 먹으면 토해요.”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등 근육도 뻣뻣이 굳어 무력감이 더하단다.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없는, 

참으로 괴로운 상황이다. 


목소리마저 맥없이 흩어지는 그녀를 

안쓰러워하며 처방전을 살펴본다. 


너무 예민해져 

더 이상 신경이 곤두서지 않도록 해 줄 

신경안정제, 

위장의 불편함이 더해지지 않게 

제산제와 췌장효소 억제제. 


의사 선생님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현대 의학은 여전히 아쉽다.




“언제부터 식사를 못 하셨어요?”


“그저께 저녁부터, 먹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어제는 좀 먹어 보려다가 토하고…”


“아이고… 

기운이 없어서 음식을 받아내질 못하고, 

그러니까 또 기운이 더 없으시고.”


“맞아요, 그러게 말이야… 

물도 먹지 못하겠으니…”




조심스레 정황을 살펴본다. 

그녀가 최근, 곤경에 처하지는 않았는지.

주로 누구와 식사를 하는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사람이 

어렵고 불편하지는 않은지. 


신경성 위장 질환이라고 해야 할까. 

속이 불편하다며 약국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요즘 따라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황을 상상하여 

연결해 보실 수 있도록 

신체 상황을 이야기 지어 설명드려본다. 


머리로 신경 쓸 게 많아져서, 

위장 주변으로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해서 기운이 떨어진다고.


혹은 답답한 마음 때문에 

몸의 기 흐름이 막혀서 

위장이 무기력해져 있다고 설명을 해드린다. 


그분들이 처한 마음의 상황과 

신체 증상을 연결해서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을 가지시길 바라며.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일상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더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곤 할 때가 있다. 

자존심 때문에, 

혹은 관계를 해치게 될까 봐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 말이다. 


자신과 밀접한 사람들과 다르게, 

그 사람을 

다신 안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에 

아무런 위협이 되기에, 

자기 마음을 털어놓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 

나는 종종 약국에서 그런 역할을 한다. 


흠이 될까 걱정될 만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털어놓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다. 

필요할 때는, 

다른 약국에 가면 그만이다.


그날 그녀가 

속 깊은 이야기를 

더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자리가 편안해서였을까. 

그녀는 그렇게 한동안 

약국에 앉아서 

들어오는 손님들을 나와 함께 맞이했다.




“아우, 머리 아파. 

시원한 피로회복제 한 병 주세요”


당장 속이 답답한 듯 보이는 분들에게는 

길게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드린다.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는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제품을 골랐다. 


그분이 벌컥벌컥 급히 들이켜고 

내려놓는 약병을 보면서, 

한참을 곁에 앉아있던 그녀가 

감탄하는 투로 입을 연다.


“이거 참 좋아 보인다. 

포장을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그녀의 눈빛이 처음과 달리 

생기가 어리자, 

나는 덩달아 힘이 나서 

얼른 한 병을 더 꺼내서 그녀에게 건넨다.


“그렇죠? 포장을 참 세련되게 해 놨어요. 

좋은 거예요. 드셔보세요. 

기운이 좀 날 거예요.”


살짝 겸연쩍어하며 그녀가 마신다. 

어제오늘 물도 못 마시겠다던 그녀가 

노곤한 모습으로 천천히 마셔 넘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어떤 노래 듣고 싶으세요? 제가 틀어드릴게요.”


별달리 할 얘기가 없어 보이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녀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특별히 힘든 일도 없었고, 

왜 음식을 먹지 못하는지도 살펴보기 어려웠던 그녀는 

딱히 듣고 싶은 노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멋대로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곡을 

그녀와 나의 공간에 채운다. 


함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레트로 풍의 잔나비.




“아까 그게 정말 좋은 건가 봐. 

그렇게 괴롭더니만… 

속이 이제 편안해진 것 같네…”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다행이에요.”


처방받은 약은 아직 뜯지도 않은 상태. 

내가 드렸던 것은 

소화제도 아닌 

피로해소 음료였다. 


며칠을 부딪기는 속 때문에 

힘겨워하던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식을 다 출가시키고 

중년을 살아가는 여인. 

손주들을 볼 때마다 

환하게 웃으시는 

나의 양가 부모님들이 떠오른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농담하시며,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자식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시고자 하는 

그 마음을 떠올린다.




“혹시, 저 이제 곧 퇴근하는데, 

괜찮으시면 저랑 밥 먹고 가실래요? 

저도 배고파서…”


“그래도 돼요?”

“그럼요!”




코로나 방침으로 약국 문을 닫고 나면, 

동네 대부분의 식당도 폐점 시간이다. 


멀리 갈 상황도 아니라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고깃집으로 가서 된장찌개를 시켰다.


“나는 살림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나와서 이런 걸 돈 주고 먹으려면 너무 아까워.”


“하하, 맞아요. 

그래도 된장찌개 김치찌개, 

이런 건 언제 먹어도 안 질리는 것 같아요.”


딱 친정엄마 또래의 여인.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 

형제들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사이에 그녀는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숟가락이 뚝배기에 닿는 소리가 난다. 


그녀가 얼마 만에 먹는 밥일까. 


나와 함께하는 동안 그녀는, 

그날 병원을 찾아온 증상과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녀에게 

약이 아닌,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을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깐이나마 이런 내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믿어졌다. 


그날은 나 역시 밥공기를 싹싹 비웠다. 

그렇게 그녀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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