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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감옥에 보내줘, 그 남자랑 살고 싶어





“지금 말씀이 너무 빠르고, 

말이 겹치시는 게, 

조금 불안하신 것 같아요. 

잠깐만 앉아서 숨 좀 돌리세요.”


냉장고에서 비타민 음료를 하나 꺼낸다.


“내가 이거를 며칠 못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자낙스. 

약만으로는 불안증으로 드시는지, 

우울증으로 드시는지, 

수면장애로 드시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약은 비슷하고, 

결국 혼란스럽고 불만족하고 힘들다는 거 아닌가. 

삶의 곤경을 겪는 상황. 

어떤 창문으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의존성이 있어서… 드시다 안 드시면… 아무래도”


“맞아요. 이거 진짜 의존이 되어서. 

내가 이거 끊으려고도 해 봤는데, 못 끊어요.”


“시도해 보신 적 있으세요?”


“10년 전에 끊으려고 3개월 안 먹었다가 

육교에서 뛰어내렸어요.”


“네???”


“나도 모르게. 

기억에도 없는데, 내가 뛰어내렸더라고요. 

그때 그래서 내 다리가 이렇게 됐어요.”




정신과 약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더 이상 탐색하기 

어렵게 한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곤경과 아픔, 

혼란 속에 내던져진 이의 

고통을 완화해 주고, 

상황을 견디게 해 주고자 

편안함과 무덤덤함을 약이 제공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당장 막을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것이 치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거다. 


약을 중단하게 되면, 

그동안 눌려왔던 감정의 폭풍과 

감각의 혼란이 격해지고, 


그로 인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안과 공포에 

완전히 휘감기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더더욱 잃게 되고, 

그것을 ‘재발했다’라고 표현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약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도저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 고통, 분노, 

억울함, 혼란, 무기력 등과 관련하여, 

그 사람조차 파악하지 못한 

마음의 상황들을 

제대로 함께 살펴봐 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수가 없으니,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는 적당한 타협과 함께, 

약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설픈 선의와 임시방편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을 유예할 수 있을까.




약이 안겨주는 안정감에 길들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 보려는 동기조차 잃게 된다.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지내며, 

현상을 유지하며,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돌파할 수 있는 근력은 더 약해지고, 

가능성마저 사그라든다. 

길이 없다고, 답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이 선택지에 매몰되고 만다. 


이렇게라도 살아남아 견디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것인데, 

정신과 약을 먹는 동안 

자살 충동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들을 보면,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 

그런 삶일까? 

의문을 남긴다.




원래부터 자살 충동이 있었기에, 

정신과 약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2~3배 정도까지는 뚜렷한 증가를 하며, 

자살이라고 판단하기 애매한 사건과 

돌발적인 사고까지 포함하면 

사망률은 5배를 훌쩍 넘는다. 


왜 마음이 편안해지는 약을, 

푹 잠들 수 있는 약을 먹었는데, 

사람들은 더 죽고 싶어지는 것일까. 

왜 자신도 모르게 육교에서 뛰어내리게 될까. 




방어적인 태도만으로는 

삶을 지켜낼 수 없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무엇에 자기 가슴이 뛰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채, 


안전한 새장에 갇혀있는 새는, 

차라리 죽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새장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려는 순간, 

그 안에서 시들어버린 날개와 

연약해진 근육은 

처음보다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정신과 약에 대한 설명서에는 대부분,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는 말이 

간략히 표기되어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도움의 손길이, 

혹은 누군가의 이익이나 의무로 시작된, 

불확실한 투약 조치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연구를 한다는 것은 

환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삶을 추적하며 연구하기 어렵고, 

그 연구로 이익을 얻을 집단도 없다. 

그렇기에 그만한 돈을 지불하고 싶은 곳도 없다. 

연구가 가능하다고 한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완전히 구분해서 판단하기도 어렵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은 

선택지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것인지, 

앞으로 어떤 영향력에 지배받게 되는지 

알아차리기는커녕, 

피해를 입증할 수도 없다. 


여기저기서 약을 권하는데, 

복용 후의 삶은 자신의 책임이 되어버리고 만다.




“끊고 싶어도 못 끊어요.”


힘들어도, 

어려워도,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던 걸까.




“이 약을 처음 먹게 되신 건 언제셨어요?”

“애가 네 살, 두 살, 이랬을 때…”


상냥하고 수줍은 성향에 숫기가 없었던 그는 

결혼 생각이 없다가, 

같이 일하던 공장에서 부인을 만나셨다고 한다. 


준비 없이 시작된 결혼이라 

국내에서 버는 수입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셨고, 

당시 활발했던 수출전략에 맞춰 

외국의 공장에서 일을 맡기로 하셨다. 


일 년 여정도 해외 근무를 하고 

잠시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내가 진짜 솔직히 바람피운 거, 

그거 용서해 줄 수 있었어요. 

내가 좀 성질부리고 하는 거, 

몇 번 좀 받아주고 하면,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어. 

내가 외국에 있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기가 막힌 건, 

감옥에 보내달라는 거야. 

그 남자랑 살고 싶다고. 

죗값을 치르겠으니, 

자기를 감옥에 보내고 놓아 달라는 거야. 

와.. 

내가 진짜.. 

너무.. 너무 내가 생각도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나니까. 

와… 미치겠더라고…“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신다.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우신 것 같았다. 


조금 놀란 나 역시 

반응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그 얘기를 듣는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랑은… 

도저히 아니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못 살겠다 그랬지. 

가라고 그랬어요.”




그녀는 그렇게 떠나서 원하는 것을 찾았을까.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치러야 했던 

마음의 대가가 혹시 너무 크지는 않았을까. 


자기 자리에서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떠나면, 

그것에는 또 만족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와..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다른 남자한테 갈 테니 보내달라는 건, 

이거는 내 자존심이 견디질 못 하겠더라고요.”


“잘했어요. 잘 헤어지셨어요…”




그렇게 자기 마음 하나 믿고, 

모든 것을 감당해 내겠다는 그녀가 감탄스러웠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있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버린 남편분을 대하자니 

마음이 혼란해진다. 

부서져 버린 그의 마음은, 그의 삶은 어찌하나…




“애들은 어떻게 됐어요…”


“그래서 어쩌겠어요. 

애들은 돌봐야지. 

어머니가 애들 봐주시고, 

나는 다시 외국에 나가서, 

진짜 오로지 애들만 생각하면서 일해서 돈 보내고.”


“대단하세요…”




그렇게 해외에서 

몇 년 동안 돈을 가족들에게 부치다가, 

너무도 외롭고 지쳐서 

국내로 들어오는 중에 공항에서 그만 쓰러지셨다고 한다.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그 상황을, 과거의 아픔을 

직면해야 하는 것이 힘겨우셨던 걸까.




“정신과에서는 뭐라고 했어요?”


“이 병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서 생기는 거라고,

말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뭔가가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얘기를 했죠. 

그때 그 여자를 죽였으면 내가 사는데, 

그 여자를 죽이지 않고, 

참아서 이렇게 병에 걸린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러게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그 말을 듣고 후련해지셨다면 다행이지 싶었다. 

아내를 죽이고 싶도록 

들끓던 그 심정을 공감해 준 것일 테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사람이 너무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뇌에 새겨진대요. 

그래서 그게 안 없어진대요. 

그러고 나니까 그 뒤로 다른 여자들도 

다 못 믿겠더라고요. 

몇 번 만나서 밥 먹고, 

하룻밤 그냥 보내고 그럴 수는 있어도, 

이 여자랑 내가 살 수 있을까? 

또 배신하지 않을까? 

생각하니까 진전이 안 되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다시 안타까움이 커진다. 


만일 이분이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으로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서로 다른 

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가진 마음의 틀을 확인하고 

변화시켜 볼 기회를 

조금 더 일찍 가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자기 마음을 가진 

단 하나뿐인 그녀이고, 

다른 여성은 

또 다른 마음을 가진 존재라고. 


우리의 마음은 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풀어서 펼쳐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음들을 확인해 가며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의 삶을 다르게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자기들은 나가서 따로 살고. 

나는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 보니 

친구도 없고, 

말을 주고받을 사람도 없고… 

죽지 못해 살아요. 

난 혈압약도 안 먹어요. 

혈압이 높다는데, 안 먹어요. 

그냥 죽으면 죽지, 하는 마음으로. 

애들만 보고 살았는데, 

애들이랑 같이 살고 싶은데, 

그걸 또 부담스러워하니까.”




명절에, 갈까? 하고 묻는 자녀분들께 

눈치가 보여서 안 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명절을 혼자 지내고 나면 

점점 화가 나버린 단다. 


가겠다고 말하지 않고, 

갈까? 하고 묻는 말의 느낌에 

자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기가 미안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자발적인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의 

아픈 딜레마다. 




“요즘 애들은 상의라고 말해놓고 통보를 해요. 

아니 분명히 말은 상의라고 하는데, 

이건 통보야. 

그래서 뭐라고 하면 

이번에는 또 꼰대래. 나 참!”




사랑을 찾아 떠난 여자와, 

긴 세월 남아서 자리를 지킨 남자. 


그렇게 각자의 믿음이 그들의 삶을 만들어 간다. 

치유되지 못한 아픔을 끌어안고 

때때로 약도 먹어가며 버틴다. 


그렇게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둘이 있는 남편이 있는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 여자. 

전과자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어도, 

그 남자와 살아보고 싶다는 여자. 


그녀의 마음을 상상해 보자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결혼의 책임은 그녀에게 굴레가 되고, 

감정의 울림과 어긋나 버렸다.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척 

남편을 안심시키고, 

남편이 외국으로 돌아간 후 

연인과의 만남을 이어갈 만큼

 뻔뻔하지는 못한 분이셨나 보다. 


마음이 자꾸만 터져 나와 

감출 수가 없었나 보다. 


사회적인 비난과 형벌을 감당하더라도, 

그렇게 하루를 살더라도, 

그 남자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 


살아있는 동안은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지금 그녀는 그때의 일을 

허망해하고 후회스러워하고 있을까, 

빛나고 반짝이던 감격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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