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약사 Jan 08. 2023

아이의 스마트폰을 뺏으면 생기는 일





사십 대 초반의 여성 한 분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9살 아이 체할 때 먹는 약 있어요?”

“9살이요? 9살은 아직… 그냥 백초시럽 먹이시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체했어요?”

“자주 체해서 그냥 상비로 사다 놓으려고요.”

“왜? 자주 체해요? 아이가 좀 예민해요?”

“식탐이 많아서 ㅎㅎ 토할 때까지 먹어요.”



우리는 보통 식사를 토할 지경까지 하지 않는다. 

먹는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거나, 

먹다가 배가 부르다고 느껴지면 그만 먹는다. 

그런데 이 아이는 왜 체할 때까지 음식을 먹었을까? 


아이가 무엇인가 충족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가 생각했을 때,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거나, 

원하면 안 된다고 두려워하거나, 

혹은 달리 무엇으로 마음을 채워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대한 탐색을 마음에 담는 대신, 

오로지 음식으로 배만 채우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 저학년은, 

생활 영역이 확장되면서 엄마와 실랑이할 것이 참 많은 시기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살펴줘야 하고,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친구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자극들을 많이 접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아이가 부모와의 애착에 매달려서 

자기를 형성해 나가고, 

가족의 영향권 안에서 머무르려 하기에, 

부모는 지금 습관을 제대로 잡아놓을 

마지막 기회라며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주로 아이가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달라는 약은 주지 않고, 

또 엉뚱한 질문을 나는 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거의 누워 있어요.”


“누워 있어요 

어른들의 경우에, 열받거나 심심해서 그냥 계속 먹을 때 있잖아요. 

혹시 요즘 아이가 뭔가를 하지 못하게 된 게 있을까요? 

누워 있기 전에는 주로 뭘 했었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아! 스마트폰을 너무 봐서, 그걸 요즘에 뺏었어요. 

너무 하루 종일 그것만 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안 하고


“혹시 아이가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뭘 하며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집에 오면 일단 옷도 개어 놓고, 가방도 걸고, 

씻고 학원 숙제도 해야 하고 그래야 하는데…”



집마다 문화가 다르고, 부모마다 성향이 다르듯, 

이런 규칙에서 나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일단 나부터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도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때, 

외투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자기 방까지 사회생활의 짐을 들고 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의무와 품위를 유지했던 것들을 

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첫 아이만 학교생활을 할 때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는데,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 되고 나니 

현관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은 옷걸이를 놓았었는데 

아무 소용이 없어서, 

아예 커다란 상자를 현관에 두고 

짐과 옷을 다 그 안에 넣어 놓으라고 했다. 

(물론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핸드폰을 할 때는 주로 뭘 하던가요? 혹시 본 적 있으세요?”

“게임을 하거나 검색하거나..”



전자 기기를 활용한 게임은 

성장기 아이들을 둔 부모들에게 항상 화두가 된다. 

다른 친구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또래 문화로서 인정하는 포용적인 시각과, 

학업에 방해 요소라고 보는 엄격한 시각이 공존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빠른 자극에 익숙해진다는 견해, 

가짜 성취에 중독될 수 있다는 염려 등과 같이 

부모들에게 불안을 주는 정보들 속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인간이 하는 행동들이 서로 엇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우정을 경험할 수도 있고, 

미션에 몰두해서 얻어내는 성취감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 해결력에 대한 확신을 기를 수도 있다. 

또한 학교와 책에 없는 생생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며 그것을 키워갈 수도 있다. 


특히나 일상이 시시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 

끝없이 친구들과 소통하며 

자기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싶은 아이들에게 

온라인 환경은 참 유용한 도구이다. 


이러한 욕구들을 스마트 폰으로 충족시켜 보려던 아이는, 

뻗어나가던 배움의 가지가 잘리고 

호기심의 싹이 꺾인 채로, 

그저 방 안에 누워 있거나, 

토하고 체하도록 먹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던져본다.



“그렇다고 마냥 하게 둘 수는 없잖아요.”



그 심정 또한 백 번 이해가 간다. 

일상생활 속에서 향락을 절제하고 

생활환경을 정돈하며 유지하는 것은 

분명 좋은 가치이다. 


그리고 호기심과 탐색, 놀이 역시 

자아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덕목이다. 

양쪽 모두를 취할 수는 없을까?


나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우리 부부의 성향과 취향을 고려하여 

우리 집 상황에 맞춘 

현재까지의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게임은 아빠와 아이들이 

다 같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문화의 영역이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활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형제끼리 함께 모험을 공유할 수 있고, 

각자에게는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키우며, 

이야기를 만들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창작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조심스레 전달해 보았고, 

어머니는 그렇게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며 

꽤 흥미롭게 들어주셨다. 

또한 스마트 기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되짚어 보시기도 하셨다. 


처음 화두로 던져졌던 것은 

식탐과 식체의 문제였지만,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아이들이 처한 환경과 

그 안에서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었다.


하물며 젖먹이 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적절히 음식을 조절하여 섭취할 수 있다. 

부모가 느끼는 아이에 대한 불안의 정체를 

선명하게 확인하지 못했을 때, 

아이에게 공감되지 않는 통제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소 예민하고 생각이 통통 튀는 아이들은, 

명확하게 이해되지 못한 작은 제약을 두고, 

때때로 자기의 방식으로 엉뚱하고 과장되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아이가 스스로를 검열하며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 나는 두렵다.


부모가 아이와 살아갈 시간은 길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자신의 믿음을 충분히 탐색해 볼 수 있다. 

당장의 하루 이틀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그리고 각자의 집에 어울리는, 

각각의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부모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고, 

아이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냐는 점이다. 

아이들이 환경에 짓눌려 무기력해지지 않고, 

특유의 상상하는 힘과 

새롭게 시도해내는 힘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전 01화 감옥에 보내줘, 그 남자랑 살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