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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Jul 31. 2016

5. 학사모를 든 레고 인형

좋은 선배 되기

"YG:형 이번에 학회 갔다가 레고 월드를 다녀왔는데, 형한테 딱 맞는 인형이 있어서 들고 왔어요. 졸업하고 싶은 마술사인데, 마술사 모자를 쓰고 학사모를 들고 있는 레고 인형이에요. ㅎㅎ 졸업하면 모자 바꿔서 씌워주세요."


후배가 해외학회를 처음 다녀오면서 나에게 기념품을 선물했다. 마술사 모자를 쓰고 있는데 학사모를 들고 있어서 졸업을 하고 싶은 '매지션 우(작가의 아이디)를 정말 잘 표현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선물 받은 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연구실 모니터 위에 순간접착제로 붙여서 올려두었다. 내 자리에서 모니터를 올려다보면 레고 인형이 눈이 들어온다. 

그림 5. 학사모를 든 마술사 레고인형


YG는 대학원에 들어온 신입생들 중에서 굉장히 친근한 후배 중에 하나다. 석사 신입생이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휴학도 해서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YG가 다른 대학원생들과의 술자리를 여러 번 만들어준 덕분에 친해지기 어려웠던 신입 대학원생들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의 인맥을 좀 더 넓혔다. 점점 인맥들이 줄어드는 나에게 있어서는 멋진 기회를 준 친구였다.



박사과정에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내가 알고 지내던 선배들과 동기들이 하나 둘 씩 학교를 떠나고 새로 입학한 후배들로 주변이 채워진다. 내가 수업 조교를 했던 후배들이 대학원의 동료로 들어오기도 하고, 심지어 고등학생 때 나에게 개별 연구를 했던 학생까지 대학원 신입생으로 입학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바뀌면서 함께 맘 편하게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이 줄어들었고, 대학원 생활을 함께 버텨나갈 친구들이 줄어든 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과 친해지려고도 노력했었지만 생각보다 그 과정이 어려웠다. 후배들과 친해지려고, 커피와 밥도 사주고, 연구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어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꺼내면 후배들이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비유를 하자만 내가 아직 교수님과 미팅할 준비가 안되었는데 교수님이 급하게 연구에 대해서 물어보실 때의 드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사실은 큰 의미를 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닌데,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못 하면 그것으로 자신을 평가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조금 느껴지기도 했다. 


또 후배들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내 연구는 이랬었는데, 너도 한번 이렇게 해봐'라고 조언해주는 것이 다른 후배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경험에만 비추어 조언을 해주는 이른바 '꼰대'처럼 보이지 않을 까도 신경이 쓰인다. 가끔 어른들/선배들/교수님들께서 조언을 해주실 때에도 지금의 나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언을 확신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후배들이 먼저 나에게 묻기 전에 연구에 관련된 이야기를 내가 먼저 해주는 것이 꺼려지게 되었고,  이야기할 주요 화젯거리가 없어진 것 같아서, 후배들과 대화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사실 선배라고 해서 특출 나게 더 똑똑한 것도 아니다. 먼저 들어온 시간 동안 논문을 몇 편 더 읽었고, 그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몇 번 더 해봤고, 연구 시행착오 더 해보고, 교수님과 좀 더 시간을 보내서 교수님의 성향을 좀 더 파악하고 있는 정도 일 것이다. 후배들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나보다 더 멋지게 성장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선배는 교수님처럼 지도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전달해 주어서 후배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배들은 조금 쉽게 그 허들을 넘을 수 있고, 나는 시도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에 자신들의 시간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선배들이 시행착오들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더라도 새로운 문제는 발견된다. 후배들은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박사생들은 자신의 졸업하기 전까지 후배들이 생기고, 그 후배들과 함께 연구를 할 것이다. 나에게는 YG라는 후배가 생겼었고,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로 했던 연구를 자신의 졸업연구로 선택하여 계속 정리하고 있다.  YG가 석사 졸업연구로 함께 했던 프로젝트를 논문화 시켜 졸업하길 바란다.


"07년도에 학부 입학할 때부터 봐왔으니 거의 10년째 보고 있는 YG야, 너 덕분에 다른 대학원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후배들 중에서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긴 것 같아. 연구 진행하는 게 힘들면 언제든지 와서 물어봐. 나랑 졸업 목표 시기가 같으니깐 그때까지 한 번 같이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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