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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Jun 09. 2016

4. 스타벅스 텀블러

박사 졸업 후  진로


‘AN: 야 ~ 니 요즘에 글 쓴다메~ 그래서 책상 위에 놔둘만한 걸로 신경 좀 썼다~ 생일 축하한다! 혹시  내 이야기 적을 거면 이 선물로 찍어서 글 좀 적어도~’


 AN형은 익숙한 부산 사투리로 텀블러를 선물로 주었다. AN형한테 받은 3번째 생일 선물이다. 박사과정의 잡동사니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듣고, 예쁜 스타벅스 텀블러를 선물로 주었다. 자신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센스 있는 선물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싶었나 보다. 선물은 가죽 스트랩이 달려있는 흰색 스타벅스 텀블러다. 꽤 신경을 써서 고른 티가 난다. 보온이 잘 될 것처럼 생겨서 겨울 디펜스를 준비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다.


그림 4. AN이 선물해준 스타벅스 텀블러


AN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석사 2년 차 때까지 학교에서 단짝으로 붙어 다녔던 친구이다. 나이는 나보다 3살 많지만, 생긴 게 동안이고, 오랜 시간 알고 지내서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업디자인 학과 2학년 때부터 룸메이트, 조모임, 공모전을 함께 했었고, 대학원 때에도 같은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공부했다. AN이 졸업하기 전 까지는 내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AN과 나는 석사 이후의 행로가 서로 갈라졌다. 연구보다는 실무에 더 관심이 있었던 AN은 석사 졸업 후 회사로 입사하고, 나는 연구를 좀 더 진행해 보고 싶어 박사 과정으로 진학을 했다. 그 이후로는 자주는 보지 못하고 1년에 1번 정도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AN을 볼 때는 내가 박사 과정에 남지 않았을 경우를 보는 것 같았다.


최근 AN과 함께 2주간 뉴질랜드로 캠핑카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AN은 전문 연구요원이 끝나고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을 한 상태였는데, 우연히 휴가 일정이 맞아서 함께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AN과 함께 스타트 업 이야기 들과, 나의 박사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주변의 교수님, 대기업 다니는 선배님과는 다른 시각에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디펜스가 다가오면서 박사 이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졸업한 박사 선배들의 70% 정도는 대기업을 선택했다. 나머지 30% 정도는 학계에 남아 포스닥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는 길을 찾았다. 아직 박사를 졸업하고 바로 스타트업을 하는 선배는 보지 못했지만, 나는 스타트업도 가능한 진로로 염두에 두고 있다. 타 학과에서는 박사과정의 연구를 이어서 스타트업을 진행하는 케이스도 많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산업디자인학과 박사 졸업생이 스타트업을 바로 시작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학계로 남을 것인지, 대기업으로 갈 것인지, 창업을 시작해 볼 것인지.. 나의 박사 졸업 후 진로는 크게 3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박사 이후의 진로를 생각할 때는 항상 내가 살면서 정말 열정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까지의 나를 동기 부여한 것은 어릴 적 생각했던 2가지 목표였다. 첫 번째 목표는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 목표를 가지게 된 이유가 조금 웃기긴 하는데, 적어도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이 목표 때문에 박사과정에 오게 된 이유도 있다. 박사를 졸업할 때쯤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졸업할 때가 가까워 온 지금에서 Do-it-yourself 스마트 홈과 사물인터넷의 사용자 경험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박사 졸업을 할 때에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 인생의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두 번째 목표는 내 아이디어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내가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목표 때문에 나는 박사 이후의 내 진로에서 학계 쪽 보다는 실무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학계에서 만들어낸 지식은 사용자들에게 직접 전달되는데 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 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에서 실무를 배우거나, 창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입사의 경우에는 주변에서 큰 우려가 없는데, 창업에 대해서는(지도 교수님도 포함하여) 주변 분들이 많은 우려를 표했다. 그런 우려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첫번째 직장이 내 연봉의 standard 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직시에 연봉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2) 첫 직장을 스타트 업으로 가면 그 길이 잘 안되었을 때에는 다음 직장을 잡기가 어렵다.  

3) 박사에서 배운 것들이 많은 쓸모가 없다. 특히 내가 배운 사용자경험 연구는 실무에서 필요로 하는 UI작업, 그래픽 능력과는 거리가 있다.

4) 처음 부터 창업하면 너무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다. 그래도 실무를 조금 알고 시작하는게 더 좋을 것이다.


1번은 경우에 따라 조금 다른데, 계속 대기업을 다닐 것이면 이 말이 맞다고 한다. 자신의 현재 연봉을 기준으로 책정이 되기 때문이다. 2번은 잘 모르겠다. 스타트업을 시작했다가 다시 대기업으로 잘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 같고, 또 막상 취업을 하면 잘 됐던 케이스들도 몇몇 보았다. 3번의 경우에는 학계를 가지 않으면 어디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4번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 연구와 실무는 다르기 때문에 정말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주변에서 창업에 대한 우려들만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좋은 점들에 대한 이야기 들도 들어보고 싶었다. 운이 좋게 2주 동안 AN과 여행을 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함께 뉴질랜드를 여행을 시작한 지 두 번째 날, 데카포 호수 주변을 돌면서 AN형이 이런 말을 했었다.


"AN: 석사랑 박사랑 제일 다른 것 같은 점은, 박사는 없던 문제를 찾아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접근하고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니가 스타트 업을 시작할 능력이 절대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말 니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


AN형의 한마디 말로 내 진로를 결정할 순 없겠지만, 스타트업이라는 진로에 대해서 두려움이 조금 줄어들었다.  박사과정에서 배운 능력들이 단지 관련 분야의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는지, 프로젝트를 어떻게 제안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지에 대한 능력'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에서 배운 경험을 통해서 관심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찾고, 기획하고, 팀을 꾸려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스타트업이라는 본질 때문에 수익을 창출해야 되고, 학교와는 다르게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이라는 진로가 다른 분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박사과정에서 배웠던 능력들이 전혀 안 쓰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걱정은 줄어들었다.




박사 졸업 후 진로의 갈림길에 곧 서게 된다. 어쩌면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진로 걱정 없이 학교만 다녔던 나로서는 이렇게 중요한 갈림길에 처음 서게 되는 것 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런 제약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인 것 같다. 지금의 선택이 주저되는 이유는 앞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내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무엇 인지를 계속 고심하게 된다. 곧 다가올 갈림길에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AN 항상 챙겨주는 생일 선물은 감사하게 받고 있어. 형은 언제 만나든지 학부 때 열정 넘치고 즐거웠던 시절로 되돌아 가는 것 같아서 형을 만날 때마다 유쾌하게 즐거운 기분이 들어. 형이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도전적인 선택을 하는 게 멋있고 나에게도 굉장한 영감을 주고 있어. 여행 동안 형이 나한테 해주었던 이야기들은 앞으로 내가 선택할 길을 선택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앞으로도 졸업 전까지 형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테니 잘 부탁할게! 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대박 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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