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

by 아마추어 진화기

누구에게나 열린 바다라는 공간은 나에게는 꽤나 비밀스러운 곳이다. 내가 조금만 더 철이 없었다면, 나는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그래서 내 폐가 바다향기로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고 말했을 만큼... 집 뒷문 돌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면 시멘트 보도를 경계로 바로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그 길 위로, 어느 날은 채 피지 않은 붉은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기도 하고 태풍이라도 오는 날이면 그 길 언저리까지 파도의 흰 거품이 스며들곤 했다. 그럴 때면, 겁먹은 어린 마음은 바다가 갈라져 버린 꿈속을 헤매다 그물에 주렁주렁 소라껍데기를 매단 주꾸미 잡이 배가 정박해 있는 현실에 눈을 뜬다. 파도가 밤낮없이 반지르하게 닦고 쓸어놓은 모래사장의 촉감이나 함박눈으로 뒤덮였던 고요보다 적막한 바다를 기억하기 위해 그 시간들은 아낌없이 흘러갔다. 나이를 조금 먹고는 바다를 그저 바라보는 일이 많았던 듯하다. 무슨 생각 속에, 어떤 음악들 위에 담겼던 풍경인지 모두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수평선 위에 떠 있던 섬의 옷깃만큼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를 회상하며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는 바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조금 해 보려 한다.



바다는 우주에서 왔다고도 한다. 지구가 산통을 겪듯 무수한 충돌과 떨림을 겪어 낸 후 고이게 된 게 바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우주를 그리워하듯 달에 이끌려 밀려왔다 밀려간다. 바닷속은 깊고 깊어서 잘 아는 이가 드물다 했다. 빛이 그 길을 잃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갈라진 해저 위로 수온이 300-400도를 넘기기도 하고, 바닷속에 또 다른 바다가 존재하듯 소금의 농도가 다르게 응축된 곳도 있다고 했다. 어둠 속을 유영하던 뱀장어가 높은 소금 농도에 잠시 기절하는 때가 있으니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묵도했을 바다지만 비극적인 역사의 무대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꺼려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바다는 떠나보냄의 한이 서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을 보듬어 주지 못하는 우리를 보고, 바다는 괴로워했을지 모른다.


바다 어느 곳에 가면, 내둘러진 그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마구잡이로 붙들리고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버려지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고도 했다. 그렇게 비어 가는 가슴 위로 다시 지느러미만 잘린 상어 몸뚱이를 내던지는 일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바다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육지에서 흘러들어온 플라스틱 잔해들은 섬을 이룰 만큼 크고 위협 적이라 다시금 살아있는 섬도 죽게 만들고, 주인을 잃은 폐그물이 바닷속 어딘가에 죽음의 그림자를 계속 드리운다 하니 바다는 매일 악몽에 시달릴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다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역시나,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은 몇 걸음만 내달리면 발끝에 닿았던 고향 앞바다가 아프리카 서쪽 어느 해변의 파도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바다는 결국 다 이어져 있음을 알기에.. 그래서 아득하고 더 그립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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