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

by 아마추어 진화기

(이미지: 다큐멘터리 Intelligent trees)


나에게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일은 학교 운동장 초입에 서 있던 나무와 친구가 된 순간부터 인지도 모르겠다. 불분명한 것들 투성인 사춘기에 꽤나 분명하게 나를 이끌었던 존재였기에 지금까지도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남아있다. 언제든 교실 창밖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사춘기의 마음 한가운데 뿌리를 내리기에는 나무라는 대상만큼 적절한 것도 없어 보인다. 이름을 짓고, 편지를 쓰고, 마음을 나누기를 몇 해 아직도 오래된 나의 비밀 번호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누군가 나에게 나무는 특별한 존재라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벗이 되었으니 참으로 운이 좋았다. 그렇게 나무는 나에게 불통의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소통의 창구가 되어 주었다.


최근에 와서야 나무가 나에게 건네었던, 아니 내가 나무에게 품고 있었던 소통의 희망은 실체가 존재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시야를 가르는 지면을 기준으로 땅 위와 땅 아래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고, 나무들은 실로 소통을 통해 서로를 보살피는 일을 묵묵히 해 왔음을 말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상호 작용은 뿌리와 뿌리, 그리고 그 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주는 균근균 (mycorrhizal fungi)에 의해 가능하다. 식용이 아니면 관심 밖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그 숲 속의 작은 버섯들이 땅속으로 뻗어내는 실타래 같은 균사 (hyphae)가 식물의 뿌리와 소통하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영양분을 전달하는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물질의 이동 만으로 소통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떠한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여러 연구 결과는 이 소통의 궁극적 방향이 건강한 숲을 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나무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나무를 엄마 나무라 칭하기도 하는데 주변에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의 성장에 이 엄마 나무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한다. 생존과 직결된 주변 환경이 좋을 때는 자신의 몫을 덜어서라도 어린 나무의 성장을 돕지만 환경 자체가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오히려 애초에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한다. 불필요한 경쟁을 미연에 방지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숲의 균형을 지키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장뿐 아니라 병충해의 공격을 받았을 때, 공격받은 나무에서 만들어지는 방어 기작 물질이 다른 나무들에게 전달되어 미리 피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니 요즘 같은 팬데믹 시국에 더욱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다큐멘터리 'intelligent trees' 참고하세요.)

나무를 그릴 때도 나무를 배울 때도 내 기억으로는 늘 커다란 몸통에서 뻗어내는 가지와 잎들 그리고 꽃과 열매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에 중점을 두었다. 땅 속에서 이루어지는 긴밀한 소통이 있기에 땅 위에 건강한 나무가 가능했을 텐데 그 중요성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이제는 아름다운 나무를 대할 때면 땅속 깊은 곳, 뿌리의 안부가 궁금할 것 같다. 그들이 맺고 있는 따뜻하고 긴밀한 소통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듯 나 또한 새롭게 깨닫게 된 소통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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