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상처를 남긴다
8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4살, 6살, 8살, 19살의 4남매에 언니는 1년에 몇천만원이 드는 캐나다에서 유학중이었다. 엄마는 의사 부인으로 호화롭게 살다가 갑자기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한 달, 엄마는 차를 끌고 영월 동강 다리 밑으로 나를 데려갔다. 많이 우셨다. 그리곤 내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는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엄마는 집안을 챙길테니, 보미가 동생들을 잘 챙겨줘야해."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유학중이라 8살의 내가 사실상 첫째 역할을 해야 했고, 그때부터 마음 속에는 어른이 되어 엄마와 동생들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 뒤 엄마는 3년간 술에 빠져 매일을 누워계셨다. 매주 집에 방문하셨던 피아노 선생님은 본인이 와도 나오시지를 않기에 엄마가 오래 아프신 줄 아셨다고 했다. 그러다 엄마가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계기가 있다. 밤새 마신 술로 고달픈 몸을 부여잡고 방바닥을 기어나오니, 어린아이였던 내가 밥을 차려 동생들과 먹고 있었다고 했다. 그뒤로 엄마는 혜인이가 있어서 살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중학생 때는 엄마가 돈을 벌러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는 동생들과 살았다. 자라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다. 자식들을 당당하게 키우고 싶었던 엄마는 수영이며 스케이트며 온갖 활동들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행운이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훨씬 더 최악의 경험을 하게되는 이들이 많으니까.
홀로 고군분투한 엄마 덕분에 우리는 평범하고 밝게 자랐다. 10년 뒤, 유학에서 돌아온 언니는 엄마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든든한 동료가 되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울은 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아이들이 참 잘 자랐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스물 두 살이 된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계기는 다른 사건이었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나의 많은 문제들이 가정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모든 선택과 모든 판단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다만 환경이 그랬을 뿐이고, 그에 영향을 받았을 뿐이다.
쉽게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원치 않는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으면서도 놓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나의 요구를 억눌렀다. 진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부유했다. 그러다 찾은 것들에 집착하고 가족과 불화를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의 근원은 불안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우울을 경쟁하기도 한다. SNS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건 엄청난 우울이어야만 위로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문제를 겪은 사람만이 우울해한다고 여기며, 평범한 사람의 우울은 단순하여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착한아이 콤플렉스,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 진심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기에 순종적으로 맞춰주면서도 사무치게 외로워하는 것, 평범하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의 불화와 같은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 그로부터 생기는 괴로움은 단순하지 않다. 자해를 하거나 자살사고가 있을 정도가 아니어도, 괴로움은 작지 않다.
엄마는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며 너희들을 잘 키웠는데, 왜 우울하고 불안하냐, 너희들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모르냐'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되었던 것은, 평범하게 잘 자란 사람도 죽고싶을만큼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럴만 한 일이었고, 그러므로 충분히 위로받아야 하고, 치료가 필요할 수 있었다.
4년간 상담을 받으면서 많은 걸음을 이루었다. 누군가 보기엔 작고 소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깨달음들로 인해 나는 나를 위로하고, 사랑하고, 나를 위해 선택하며, 그러면서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눈물로 괴로운 밤을 지샐 때, 누군가들이 인터넷에 올려주었던 수많은 위로들을 보았다. 내 마음같아 나를 더 울게했다. 거창한 정의나 철학이 아니라, 누군가들이 앞서 걸으며 느꼈던 작은 깨달음들이었다.
내가 위로받았듯이, 평범한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나아갈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싶어졌다.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며 수많은 생각들을 적어두었다. 이제 정말 가닿을 수 있도록 가공할 시간이 되었다.
글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라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당신은 그렇게 아프고 힘들만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을 아프게 했던 자책들은 멀리 떠나보내고, 이제는 당신을 위해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당신 한 사람에게라도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