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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Oct 21. 2021

오늘 점심 뭐먹지?

계시가 내려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다. 바로 혼밥! 직장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점심메뉴 고르는 일이라지만, 그건 아마도 함께 먹기에 적당한 식당을 찾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혼밥할 기회가 몇번씩 생기고, 나는 그럴 때마다 무엇을 먹을지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사람마다 식사에 대한 원칙이 있다. 아마 물어보면 제각각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식사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 나는 그럴 때 이런 대답을 한다.



1) 빵은 두 끼 이상 연속으로 먹지 않는다.

: 20대 중반도 나이가 든 건지, 이제는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기분이 그래서가 아니라 위가 버텨주질 못한다. 엄마가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무시무시한 역류성 식도염이 찾아온다고 경고해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엄마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는 시도때도없이 올라오는 위액과, 저녁 먹고 5시간이 지나서 누워도 위액이 올라와 자다가도 기침하는 일이다. 나는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 등 빵 류의 식사를 정말 좋아하지만, 역류성 식도염에는 좋지 않다. 그래도 먹고 싶으니까 한 두번 정도의 끼니는 먹어도, 세번째는 안된다. 갑자기 훅 트림이 올라오면서 위액이 역류하게 된다.



2) 계시처럼 땡기는 것을 먹는다.

: 몸이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계시가 찾아온다.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이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스트레스로 매운 게 땡기는 날이면 불닭볶음면을 먹거나 고추장 찜닭을 먹는다. 간장 소스가 땡기면 가츠동이나 간장 찜닭을 먹고, 치즈가 먹고 싶으면 피자나 브런치를 먹는다. 오늘 위가 정말 안좋다 하면 죽을 먹고, 부드러운 게 떙기면 연어초밥이나 오므라이스를 먹는다. 바삭한게 땡기면 튀김과 떡볶이를 먹는다. 본능처럼 팍 떠오르는 걸 보면 그게 내게 필요했던 영양소인 것이다.


3) 내가 이 돈을 쓸 가치가 있어야 한다.

: 이 돈 주고 사는건데, 맛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식당이면 3시간 정도는 기분이 좋지 않다. 때문에 맛집을 찾아내는 스킬을 단련한다. 배달음식을 시킬 때는 가게 정보가 상호와 맞는지 확인한다. OO푸드같은 곳은 높은 확률로 홀이 없고 음식만 여러가지 해서 배달만 하는 곳이다. 또는 치킨 가게에서 피자를 파는 등 주력 메뉴가 아닌 것을 상표만 등록해서 팔기도 한다. 주력 메뉴도 없고, 그것을 검증할 홀 손님도 없는 곳에서 만드는 메뉴가 맛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식당에 갈 때는 카카오지도 평점을 확인한다. 리뷰 내용까지 보면 메뉴가 맛이 없는 건지, 알바생이 불친절한 건지, 그냥 진상 손님이 남긴 리뷰인지 확인할 수 있다. 평점이 높은 곳은 대체로 괜찮다. 평점을 보지 않고 갔다가 맛이 없었고, 뒤늦게 확인해보면 평점이 낮은 경우들이 있었다.



4) 혼자서 못 갈 곳은 없다.

: 시카고피자, 마라탕, 초밥 뷔페, 유명 맛집 등 혼자서 다 간다. 아직 혼밥으로 못 가본 곳은 고깃집 뿐인데, 고기는 혼자서라도 먹고 싶을 만큼 강렬하게 먹고 싶었던 적이 없어서 가보지 않았다. 그저께도 서울역에 갈 일이 있어서, 한 4년 전부터 먹고 싶었던 <토끼정>에 갔다. 크림카레우동이 환상적이라 27분정도 황홀해하며 먹었다. 손님도 많아서 다들 복작복작 모여 앉았는데 나만 혼자였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누구와도 방해받지 않고, 이 분위기, 이 환상의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5) 먹고 싶은 곳은 태그해 둔다.

: 음식에 대한 욕망이 많아서 그런지,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먹고 싶은 곳이 있으면 꼭 태그해 둔다. 기회가 여의치 않아서 못 가본 곳이 더 많다. 어떤 음식을 먹으러 거기까지 간다는 것 까지는 귀찮아서, 근처에 가게 되면 전에 태그해두었던 식당이 없나 찾아본다. 


6) 먹고 싶은 게 없으면 분류 중에서 고른다.

: 계시가 오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러면 일단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중에서 고른다. 그 다음 <밥, 빵, 면, 국물>에서 고르고, <간장, 매운 것, 치즈> 중에서 고른다. 그러고나면 꽤 구체적인 메뉴들이 나온다. 아직 어린애 입맛이라 건강하거나 깔끔한 것은 찾지 않는다. 때가 되면 찾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애인과도 이런 취향이 맞아서,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뭘 먹을지 신나게 이야기한다. 누군가 한 명에게 계시가 오거나, 그런 게 없으면 각자 땡기는 걸 얘기한다. 너 지금 그거 원픽(1등으로 pick)이야? 어, 이거 오늘 꼭 먹어야돼. (먹고 싶어도 아니고 먹어야 된다고 강렬하게 강조) 나는 그거 투픽(2등으로 pick). 그렇게 미간을 좁히고 진지하게 토론하다가 극적 합의로 타결한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원칙이 있지만 밖으로 꺼내서 대화해보기는 쉽지 않은 주제다. 너무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는 거 얘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오늘, 가까운 사람과 나만의 원칙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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