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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Mar 16. 2024

육아 전쟁터의 외로움

은유 '해방의 밤'

아파트 입구 노란 승합차에서 아이들이 내리고 오르는 것을 가만히 본다. 한 여자가 노란 승합차에서 내리는 아이의 노란 가방을 받아 어깨에 메고 아이를 꼭 끌어안고 이내 아이가 볼에 뽀뽀를 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마음 한구석이 수족 냉증이 있는 내 손끝 마냥 서늘해진다. 결혼과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버려진 고아처럼 외롭고 캄캄했던 시절이 기억나서였다.     


신혼 시절은 눈물 바람이었다. 벌청소하려고 남았는데 친구들은 다 도망가고 텅 빈 교실에 선생님을 마주한 두려움을 동반한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손빨래를 하다 하수구 물 내려가는 소리가 왜 그리 서러웠을까. 아파트 화단에 핀 목련이 눈물처럼 떨어져 울었고 떨어진 목련 잎이 썩어갈 때는 내 속 같이 변한 시커면 목련 잎을 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서러운 봄이었다. 남편이랑 싸우거나 시댁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 친구 아닌 엄마가 필요한 날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부모는 이혼을 했고 재혼한 엄마와는 연락을 완전히 두절한 지 오래였지만 이상하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얼굴도 가물 가물한 엄마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했고 육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터에서 같이 괴롭던 남편은 홀시어머니랑 같이 살자고 기습적으로 제안을 했다. 도와줄 친정 엄마가 없어서였을까 즉각 겁도 없이 승낙을 했다. 나름 완벽한 거래라 믿으며 살았지만  완벽하게 손해인 거래인 줄도 모를 만큼 육아는 고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은 시어머니랑 작당 모의를 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은유 작가의 말처럼 왜 나는 기차를 환승하듯 원가족에서 다른 가족으로 넘어가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해방의 밤, 40쪽) 애정 결핍이 컸던 나는 나 자신을 갈아 넣어 사랑을 하고 결혼을 생활을 하고 육아를 했다. 지금 나라면 끝까지 반대하며 시댁과 살림을 합치지 않았을 텐데..... 그 시절 나는 희생하고 부탁을 들어주고 내 욕망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고 거듭 다짐하는 왜곡된 사랑을 했다.


시어머니와 살면서 1년에 제사를 7번을 지내고 손 크고 사람 좋은 (내 식구, 남 식구에게 다 사람이 좋다는 건 며느리를 죽이는 일이다.) 거절할 수 없어 더 미웠던 시어머니와 살면서 엄청난 제사 손님을 치르고 설거지를 식당 알바처럼 했다. 그 시절 식세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어머니에게 성능 좋은 가전 이모님들은 제대로 살림하는 여자는 사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어머니는 손 걸레질을 직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본인 관절이 아작이 나시고 나서야 제사도, 손걸레질도 그만두셨다.


 아직도 첫째에게 미안한 것이 여름 제사에 업고 일을 했는데 너무 울어서 침대에 세게 내려놓은 일이다. 내팽개쳐진 아이는 놀라서 울었고 나는 미안해서 같이 안고 울었다. 그날 밤에는 머리가 다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밤을 지새웠다. 은유 작가의 ‘해방의 밤’에 “그렇게 한 세월이 가고 한 생명이 컸다.”(16쪽)는 구절을 읽으며 내 육아 전쟁과 완벽히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한 세월과 맞먹은 한 생명을 키워낸 내가 좋기도 하고 동시에 싫기도 해서 먹먹했다.   

  

노란 승합차가 가고 아파트에 파란 승합차가 들어온다. 파란 승합차에는 노인 유치원이라는 글자가 노랗게 새겨져 있다. 파란 승합차에서 아이를 맞이했던 여자와 비슷한 얼굴의 여자가 등이 굽은 할머니를 맞이한다. 아직도 여전히 주변에는 자신을 갈아 결혼을 유지하고 사랑때문에 짐을 등에 짊어진 나와 비슷한 여자가 있다.

현관문을 열고 뛰어 내려가 손을 잡고 말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조용히 참는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  같이 도망가자고. 해방을 맞이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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