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Mar 30. 2024

말못할 사정이 있나요?-전문가의 외로움

우울을 말할용기/린다 개스크

" 얼마 전 주유하고 지갑을 차위에 둔 걸 깜빡하고 출발했는데 다른 운전자가 빵빵 거려서 겨우 알았다니까. 요즘 치매 올까 걱정돼."

이 말이 무섭게 주변 지인들

' 나는 계란을 올리고 그냥 운전했다.''지갑이니 다행이다 커피를 그대로 올려두고 출발해서 난리도 아니었다'. 등등

나를 위안하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사연들을 쏟아낸다. 최근 돌아서면 까먹고 서류 작업 속도도 점점 느려져 상심하던 차에 엄청난 위로를 받고야 말았다.  진심으로 내 말을 들어주는 소중하고 귀여운 사람들 앞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말이 쏟아지고 계속 엄살을 부려야지 하고 속으로 흐뭇해져해 버린다. 일상의 상처들은 종종 말을 통해 밖으로 나와 내 말 듣기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 치유되어 가림막이 되고 낯선 사람이 던지는 돌을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가림막이 부실해서 마음이라는 집에 구멍이 숭숭 나버린 사람들은 상담을 하러 온다.  말을 하면 풀릴까 작정을 하고 상담가를 찾아왔지만 첫 회기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들이 많다. 짐작할 수 없는 여러 일들을 겪은 이들은 상담가를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고민을 털어놓아 후련해지고 싶은 마음보다 진실을 직면하는 두려움이 더 큰 듯 보인다.  첫 회기에 눈물만 흘리다 끝끝내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상담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마음 편해지면 오세요.'라는 안타까운 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때로 친구들이 무속인을 찾아간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이래서 무속인을 찾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상담가는 목표도 이야기하고 직면도 하라고 하고 요구가 많은데 무속인은 니 팔자입니다. 하니깐 말이다. 때로 말로 마음이 정리안 될 때 팔자 타령해 주는 사람이 더 편한 법이다. 울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속인의 연락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디든 가서 속을 푸세요'하며 말이다.


예전에 내 아이가 친구 문제로 한동안 우울 증세가 심각했다. 상담을 하는 사람이 자식의 고민도 해결 못하는 무능력이 싫어 어디에도 말을 못 해 곪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교사인 친구는 공부 못하는 자식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싫어 한동안 아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한다. 전문가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특정 시기에 " 진심으로 내 사정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 혹시 이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우습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말 못 할 시기와 상황에 놓인다.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후련해질 기회를 잃고 나를 잃어가는 시기이다.


'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윌북)'의 린다 개스크는 정신과 의사로 오랜 기간 우울증 환자였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우울을 당당히 고백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고통과 우울한 마음을 종류별로 샅샅이 증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신과 의사이고, 오랜 우울증 환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어려움을 수치스러워하지만  '자신과 함께하는 법'을 찬찬히 알아가면서 어디서든 말할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자신과 함께하는 방법은 '굳세게 살아라'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절대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으며  매일매일 잠을 충분히 자려고 하는 작은 노력의 습관을 강조한다. 더불어 인간관계에서 지나간 상실에 연연해하지 말고 새로운 믿음을 가져보라고 용기를 준다. 그리고  당당히 다른 이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고 도움을 청하라는 당부로 끝이 난다.


이 작가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어려움이라는 고립의 시기를  나 또한 겪어보았기에 '느슨한 연대'를 추천하고 싶다. 가까운 가족에게 조차 내 말을 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말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모임 뒤에는 절대 반성하고 자기혐오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 거기서 평가받지 않고 긍정적 말들을 듣다 보면 고통은 해결의 말들로 전환되었다. 한번 복잡한 마음이 뱉어진 말을 통해 단순하게 정리가 되니 일상을 살기가 편해졌다. 그리고 다음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고 대견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말 못 한 속사정은 리베카 솔닛이 말한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창비) 내가 걸려 넘어진 돌이 아니라 나라는 집을 완성하는 주춧돌이 되었다.

이전 05화 ‘상담할 결심’- 정신과 치료를 결심한 자의 외로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