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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Apr 06. 2024

[은퇴자의 숙제] '다정한 70세 인턴이 꿈 입니만.'

니체 인생강의/이진우/영화'인턴'

" 선생님, 진짜 요즘 우리 팀장님 뒤통수를 한대 후련하게 치고 그만두고 싶어요. 그래도 참고 다닐 거예요. 내가 왜 그만둬요. 누구 좋으라고. 선생님 이 정도면 우리 팀장 사이코패스죠?"

체구는 작지만 강단 있고 일 처리도 잘하는 완벽주의자인 내담자 J는 회사 팀장 악행을 말하며 씩씩 거린다.

" 선생님께서 팀장을 인격장애로 진단해 주면 전 그 인간 불쌍히 여기며 참을 거예요. ㅎㅎㅎ. 그리고 2년 뒤면 팀장 정년퇴직이에요. 퇴직 전이면 편하게 살면 될 건데 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팀장은 수시로 잡도리를 하고 언사로 보아 갑질이 분명한데 계약직으로 일하는 J는 의논할 곳이 없어 계속 참는 중이라 한다. 주변에 알려보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 선배들도 알죠. 뻔히 보는데.... 술도 사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위로를 해주세요. 하지만 우리가 참자 이렇게 말하세요. 갑질 신고 말이 쉽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이 먹은 어른으로 미안하고도 대견하다. 나라면 저렇게 씩씩하게 참을 수 있었을까 한다. 울음을 참고 애써 해결책을 찾아가는 J에게 크게 도우고 싶지만 작은 위로뿐이라 속상하다.     


영화 '인턴'을 보면 70세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라는 은퇴 후 인턴으로 재취업을 하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는 멋진 은퇴자가 등장한다. 그는 연애 문제를 겪는 젊은이를 도우고 사장 줄스(앤 해서웨이)를 위로하며 그녀의 가정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살핀다.

물론 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고서도 후배의 성과로 사장에게 보고하는 장면에서는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아는지라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비록 은퇴를 장밋빛으로 오해하게 하는 영화이긴 해도 은퇴 이후에도 멋지게 삶에 기죽지 않고, 퇴물이 아닌 존경할 만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가능하겠구나 하는 용기를 준다.

- 사진 : 영화 인턴에서 인용 . -


영화에서 은퇴자 벤은 '다정함'과 '도우려는 마음'을 진심으로 보여주며 젊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어느 분야에 30년을 넘게 일하면 ‘일이 만든 거대 자아’가 생기는 것 같다. 핵심인 인간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효율성이나 성과가 머리에 꽉 차는 상태말이다. 결과와 효율성을 먹고사는 일로 만들어진 자아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점점 커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한때 서툴고 여린 자신은 잊고 후배들을 질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은퇴를 하는 것 같다.


물론 은퇴를 향해가고 있는 나이가 된 우리는 은퇴자들의 진퇴양난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퇴물이 되고 싶지 않은데 점점 속도는 느려진다. 직급 낮은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면 뭔가 무시를 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우리가 싫어했던 선배들의 언사를 그대로 후배들에게 쓰고 뒤돌아 후회도 한다. 어느 한때 잘 나가고 영광스러웠지만 후배들은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는다. 자식들은 나를 현금카드로 생각하는 듯한 아찔한 느낌을 호소하는 아버지들도 많다. 굳게 닫힌 자식들의 방문 앞에서 이야기라도 걸어볼까 망설이는 어머니도 종종 만난다.     


그런데 영화 인턴 속 70세 노인 벤은 연애를 해보고 싶은 정도로 매력적인 은퇴자다. 그의 재능은 하늘을 나는 것도 힘이 센 것도 아니다. 그저 남을 도우려는 진실한 다정함이 있을 뿐이다. 그는 선배라고 가르치려 들지 않고 진심으로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상대의 처지를 살핀다.

영웅이란 어느 날 등장하여 착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라면 영화 속 벤은 ‘흰머리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가 좋았던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정받으려면 몸짱이 되거나 젊은이들의 코드를 어설프게 따라 하기보다 다정해지길 선택하겠다. 다정함은 상대의 삶의 서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속으로 여러 번 되뇐다. " 이 사람은 남의 집 귀한 자식이고 우리 자식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다정함은 노력에서 나오고 도움은 마음속 진심에서 이루어짐을 절대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고독사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 오순도순 도우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을 뿐이다.  돌아가신 우리네 시골 할머니들처럼 말이다. 팍팍한 도시를 견디는 것은 다정한 눈빛을 한 사람들 때문이라서....    


" J 씨 말이 다 옳아요. 팀장 나쁘네. 팀장 인격장애 맞아요. 제가 인정 1000퍼센트 해줄게요.  마음이 좀 어때요?"


" 아니에요 선생님. 팀장도 불쌍하죠. 그래도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좀 힘이 나요. 저 잘 참아 볼게요. 저는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이 좋거든요."


그녀가 웃으니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도우는 다정한 사람으로 남으려 노력한다.

 다정함으로  위버멘쉬... 니체의 초인


   

- 니체인생강의, 이진우.  - 인용       

형이상학적 가치, 천상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능력을 가진 자가 초인이에요. 여기서 새로운 가치와 창조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초인은 자신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창조할 능력을 가졌다면 물리적으로 힘이 세지 않고,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못하며, 사이보그처럼 영원히 살 수 없을지라도 그 사람은 초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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