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ff Nov 12. 2024

1. 중년 심리 예보 1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

"나 요즘 좀 그래.. 우울하고... 왜 이런지 모르겠어."

그녀는 평소 침착하고 결단력이 있어 따르는 이가 참 많은 사람이다. 내가 아는 외유내강에 딱 들어맞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활기찬 그녀가 모임 자리에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가는 걸 처음 보았다. 들어보니 아버지가 치매가 온 것 같은데 밤낮으로 전화를 해서 집에 와서 돌봐야지 너는 나쁜 년이라며 욕을 계속하신단다. 심리적 한계를 느낀 그녀의 눈은 갈 곳을 잃었고 눈 주위가 붉어졌다. 잠깐 침묵 뒤 모임 사람들 모두 질세라 서러움을 이야기한다.


이제 중년의 서러움을 들어보자.

어느 날 가까운 친구가 건강 검진 뒤 종양을 발견하고 투병 중이다. 제 몸 살필 겨를 없이 내달린 결과일까. 아연하고  섬뜩한  공포가 밀려온다고 한다. 스스로도 몸에 한계가 오기 시작한 걸 느낀다. 급하게 더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을 조절한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건강보조식품을 사서 먹는다. 앞다투어 푸념을 쏟아낸다.

그래도 푸념 끝 결의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서로를 응원하고 토닥거리며 모임을 마무리한다. 

'건강해야지. 그래야 뭐든 하지' 마음을 다잡자. 그래 그러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버티다 돌아보니 아직 부양할 가족이 그득하다. 거기다 독립해야 할 아이들은  독립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여전히 내 돌봄을 필요로 한다. 끝나지 않은 육아와 효도는 자주 숨이 막힌다.  

급기야 어느 날 한마디 날려 버리기도 한다.

“야. 나도 너처럼 나 같은 엄마 있었으면 좋겠다.”

살짝 흘겨보던 아이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눈을 옮긴다. 뒷골이 땅기고 모골이 송연하다. 시대가 어렵고 부동산이 비싸고 취업이 어려워진 나라 꼴이 우리 아이 탓이겠냐마는 문득 아이가 밉다. 마음에 구멍이 숭숭하다.  


대재앙 중년 시대가 도래했다. 밀레니엄 공포 예측에 버금간다. 내가 우리 부모를 부양하듯 우리 아이들은 나를 돌보지 않고 내가 위 상사를 깍듯이 모셨듯 아랫사람들이 나를 모시지 않는다. 우리 이전 세대는 은퇴를 하고 그냥저냥 지내다 수명을 다했지만 이제 100세 시대가 와버렸다. 이 지경의 혼란이 올 줄이야. 중년은 정체성 혼란을 맞이한 청소년처럼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오히려 잘 될 것이라 믿고 쌓아 올린 희망의 시간이 대부분이라 청소년기 보다 더 무겁고 절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정체성 쓰기... 순식간에 들이닥친 전염병처럼 덜컥 겁이 나고 공포스럽니다. 재앙이다. 대재앙이야.

" 그렇다.. 이 시대는 우리를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김혜남)'에서 작가는 노년까지 살아보면 결국 인생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한다. 30대 읽을 때는 아하 그래? 나이 든다는 것은 해볼 만하다 했었다. 해맑았던 30대 여.!!!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문을 열려면 문고리를 잡아야 할 텐데 문도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결국 문 반대편에 갇혀버릴까 봐 무섭고 답답하다. 더듬거리며 찾게는 될지 정말 모르겠다. 차라리 누가 좀 내 손을 잡고 문 앞까지 데려다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이전 01화 1부. 섬뜩한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