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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Feb 04. 2024

비행기가 스리랑카로 회항한 이유

어느 가족의 하늘 표류 이야기

"와아! 짝짝짝~ 와아! 휘이익~"

비행기의 바퀴가 인도 활주로에 닿는 순간, 비행기  안은 박수소리와 환호성으로 마치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도 비록 얼떨결에 옆자리에 앉은 인도인과 박수에 동참했지만 내 생애 이런 박수는 처음이었다. 드디어 비행기에서 내려 다음 일정을 계속할 수 있다는 안도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하늘길을 뚫고 조정한 파일럿의 수고로움, 이 한 몸 인도 땅에 안전하게 도착한 비행기 안의 모두를 위한 박수였다. 역시나 인도의 첫 번째 관문인 하늘길 마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인도는 그들의 하늘을 열어주었고, 우리 가족은 박수를 치며 인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는 인천을 출발해서 말레이시아 쿠라룸푸르를 경유하여 첸나이로 들어오는 일정이다. 쿠라룸푸르에서는 체류하지 않고 공항에서 대기하여야 한다. 인천에서 쿠라룸푸르까지 6시간, 쿠라룸푸르 공항에서 대기시간 4시간, 쿠라룸푸르에서 첸나이까지 4시간.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5명의 가족 치고는 쉽지 않은 일정임에 분명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우리 가족을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인천에서는 출발이 지연되고 인도 상공에서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우리가 도착하려던 첸나이 공항은 우리 비행기의 착륙을 불허했다. 기장은 기내방송으로 영어로 뭐라 뭐라 는데 공기질 악화에 의한 시야확보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거 같았다.

'공기질 악화? 미세먼지 그런 건가? 잠깐만 그래서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으로 간다고? 설마 아니겠지. 진짜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평온할 수가 있겠어? 내가 잘 못 들은 거겠지.'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나는 주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려던 인도가 아니라 인도 아래 스리랑카의 공항으로 간다는데 그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술렁거리지도 않는다. 한두 명의 승객은 승무원을 불러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차마 물어볼 수 도 없었다. 승무원과 영어로 얘기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잘 못 들은 걸 거야. 진짜로 그렇다면 수백 명의 승객들이 이런 반응일 수가 없지.'

비행기는 다시 고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항속하기 시작했다. 인도 하늘 구름 위 성층권에서 나 혼자만 대혼란에 빠졌다.




구름 아래로 공항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푸릇푸릇한 아주 목가적인 공항이었다. 푸릇한 활주로에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지만 비행기 밖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었다. 그곳은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없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짐칸에서 짐을 내리며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우리 가족과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승객이 편안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허둥거리는 나의 모습마저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만, 내 딴에는 최대한 능청스럽게 등에 메려 했던 가방을 짐칸에서 자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던 우리 가족은 졸지에 육지를 밟을 수 없는, 하늘 위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하늘 표류자가 되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이가 없고 헛웃음 났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제일 컸다. 잘 들리지도 않아, 제대로 말도 못 해, 핸드폰도 안 터져, 그저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은 비행기를 탔던 한국인들을 찾아 상황 파악을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한국 가족이 눈에 띄었다.

"언제쯤 출발한대요?"

"본인들도 모른데요. 하하"

잠시 후 기내방송이 울렸다. 첸나이 공항에서 승인이 났으니 우리 비행기는 출발한다고, 하지만 시야가 좋지 않으니 착륙이 쉽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듣던 중 기쁜 소식이었다. 기장은 마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거 마냥 비행기 고도를 높였다. 구름 위에서 본 첸나이의 하늘은 정말 한 치 앞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기상악화가 아닌, 대기오염에 의한 스모그가 이 정도라니 정말 인도스럽다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미세먼지는 그냥 애교 수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우리 비행기는 인도 첸나이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었으나 실제로 12시에나 도착했다. 인천을 떠나 첸나이에 도착한 약 19시간의 여정은 6살 막내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막내도 내 옆에서 박수를 연신 쳐댔다.




인도라는 나라를 첫 해외여행지로 정한 우리 가족은 그에 걸맞은 신고식을 나름 대단하게 치렀다. 이 신고식은 인도라는 나라에 발을 딛기 전부터 인도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나 첸나이 상공에서 스리랑카로 회항할  인도인들의 의연함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지연시간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불평도 있을 법 한데 그 누구도 심각한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첸나이 상공에서 스모그를 탓하고 이후 일정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것을 이미 그들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 대신 그들은 각자의 어그러진 일정보다 모두의 안전을 신께 빌었을 것이다. 하늘에서의 약 5시간이라는 표류시간은 하늘에서 무의미하게 비한 시간이 아니었다. 대신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인도땅을 밟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을 알고 있든 듯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모두가 자축했다. 이렇게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는 첸나이 공항 어느 곳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드디어 나의 감각 구멍들이 인도를 받아들이고 서울에서 입고 온 패딩을 벗어 허리에 둘러멨다. 남국의 이국적인 풍경과 소리와 냄새들은 우리 가족을 위해 제법 다정하게 반겨주었다.


어서 와. 여기가 바로 인도야. 쉽지 않지? 그래도 반가워.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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